중세시대 박람회와 길드 그리고 광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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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제의일에 열렸던 큰 시장을 영국에서는 페어(fair)이라고 불렀는데 라틴어의 ‘fair’은 휴일, 제의일을 의미한다.

중세의 시장과 박람회

영국의 대표적인 박람회였던 세인트 차일즈(St Giles) 시장은 국왕 윌리엄 1세의 허락을 얻어 그의 형재인 한 성직자자 웬체스터 지방에 개설한 시장이었습니다. 세인트 차일즈 시장이 열리는 전야에는 시장 치안 담당관이 그 도시의 성문의 열쇠를 두 손으로 받들어 성직자에게 바쳤습니다. 성인의 제의일에 열렸던 큰 시장을 영국에서는 페어(fair)이라고 불렀는데 라틴어의 ‘fair’은 휴일, 제의일을 의미합니다. 영어에서는 주간, 월간으로 기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매매 장소를 뜻으로 마켓(market)을 쓰고 매년 1, 2회 열리는 시장을 페어 즉 박람회로 구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시장과 박람회는 규모에서뿐 아니라 외국 상품이 대규모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달랐으며 박람회는 견본 시장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따라서 박람회에서는 유럽의 전 지역의 국가들로부터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세인트 토니 박람회(saint Tony fair)

프랑코 왕이 교회에 642년부터 시장을 열어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시장과 교회의 근본적인 유착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처음에는 10월 9일의 제의일에만 시장이 열리다가 15세기에 이르러서는 한 달이나 계속될 정도의 큰 규모로 발전하였습니다. 시장이 열리는 기간에 파리의 일반 상점들은 전무 문을 닫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도 여러 가지 상품을 구입하거나 교환하고 거지와 도둑, 여자들도 들끓고 아이들도 떼를 지어 시장에서 장난을 치고 다녔습니다.

중세의 동업 조합 길드(guild)

중세 유럽의 상공업은 길드가 주체인데 수공업자나 상인들이 상호 부조와 보호 및 직업상의 권익 증진을 위해 결성한 조합입니다. 길드는 11~16세기에 유럽에서 번성하여 경제·사회 구조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었습니다. 길드는 회비를 내거나 기부한다는 뜻의 ‘Gild’ 또는 ‘Geld’가 어원으로 덴마크나 독일에서도 기부 행위가 선행되는 조합이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길드가 동업자들끼리의 우호적인 모임에서 공업이나 상업의 동업 조합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은 12세기경부터이며 14세기에 이르러서는 제조업 길드보다 상인 길드가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상인 길드는 특정 마을이나 도시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의 전부 또는 대다수가 참여하는 조합이었으며, 조합원들은 지방 상인이거나 원거리 무역상인일 수도 있고, 도매상이거나 소매상일 수도 있고, 취급하는 상품에 따라 각양각색일 수도 있었습니다. 국왕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사업을 독점하고 상품의 품질 저하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도록 하였으며 품질 검사, 수출입 단속, 동업자들끼리의 쟁의 중재나 재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장악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공업 길드는 특정 산업의 모든 기술자와 장인을 포함하는 직업 조합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모직업에는 직공(織工)·염색공·축융공(縮絨工) 등의 길드, 건축업에는 석공(石工)·건축기사 등의 길드가 있었고, 도장공(塗裝工)·금속세공인·대장장이·제과기술자·푸주한·무두장이·비누제조공 등의 길드가 있었습니다.

길드는 지역경제에서 여러 가지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소재지에서나 특정의 산업에서 거래의 독점 체제를 수립하고, 상품의 질과 거래 관행의 보전을 위한 기준을 세우고 유지했으며, 거래 상품과 필수 일용품의 안정된 가격의 유지를 위해 힘쓰고, 조합원들의 권익을 증진하고 그들의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읍이나 시 정부를 통제할 수단을 강구했습니다.

로마는 가도를 통해 제국을 관리하였으며 가도의 허브와 같은 지역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동업자들은 일정 구역에 모이는 것은 프랑스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동업자의 거리와 시장, 박람회가 한 도시에 공존하던 풍습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파리에는 미장이 거리, 소금 거리, 푸줏간 거리, 마구 거리, 금은 세공 거리, 닭 거리, 모피 거리, 유리 제품 거리 등이 있었습니다. 환전상의 거리는 각 나라의 돈을 바꾸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대출의 형태를 띤 거래도 해했던 흔적이 있는데 오늘날 금융 시장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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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가 동업자들끼리의 우호적인 모임에서 공업이나 상업의 동업 조합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은 12세기경부터이며 14세기에 이르러서는 제조업 길드보다 상인 길드가 우위를 점하게 된다.

깃발, 상품 마크, 로고, 문장의 출현

깃발 : 중세시대에는 광고나 선전의 수단으로 여러 가지 모양의 깃발이 사용되었습니다. 귀족이나 기사들이 지위의 나타내는 표시가 깃발에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정치적인 목적으로 깃발이 사용된 것은 나치나 노동조합이나 정치단체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상품 마크 : 중세시대에 상품에 마크를 넣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유명 마크를 모방한 가짜 마크도 유행합니다. 12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상인 또는 동업 조합은 타인이나 타조합의 마크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마크를 칼에 새겨서도 안되었다. 중재인이나 심판이나 재판에서도 엄격한 법령으로 기득권자를 보호했는데 이는 상표권 보호 법령의 효시가 됩니다.

출판사 로고 : 책에 출판사 로고를 넣은 최초의 사례는 1457년 독일 마인츠에서 푸스트와 쇠퍼가 공동으로 만든 기도서(『2개의 방패』)입니다. 이 책은 인쇄된 세계 세번째 책이며 발행자와 발행일이 명시된 세계 최초의 책입니다. 동업 조합은 그들의 성인의 제의일이나 축제 행렬, 국왕이나 왕비의 행차나 장례식 때 조합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차림이나 보석으로 치장한 깃발을 들로 행렬의 맨 앞을 차지하여 자기 조합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며 으스댔습니다. 당시 주요 조합은 생활 필수품 조합, 건어물 조합, 모피 조합, 양품 조합, 금은 세공 조합, 환전상 조합 등이었습니다.

문장(coat of arms) : 특수한 개인이나 가문, 지위 등을 나타내기 위해 사물의 형태나 문자를 디자인 한 것입니다. 문장은 고대 시대부터 세계의 많은 도시, 국가, 민족에서 사용되었다. 동업 조합 번성에 따라 이들은 조합의 직종을 표시하는 상징을 사용하였는데 결국 상품을 대표하는 마크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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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간판

로마 시대의 술집이 가게 앞에 관목의 가지를 묶은 다발을 내건 풍습은 중세까지 전해 내려왔습니다. 어떤 집에는 그림이 아닌 상품 실물을 내걸기도 했다. 처음엔 형태가 단순했지만 나중에는 디자인 감각이 가미되어 볼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그림 간판이 선호되었는데 상품의 종류가 많아질 수록 상점이 전문화되고 간판에 문자를 더러 넣기도 했습니다. 상점의 이름을 문자로만 쓰면 기억을 잘 못했으므로 이름을 그림으로 바꾸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여관은 여러 계층의 여행자나 지방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한 십자가 장식이나 이교도인들을 위한 태양과 달의 그림을 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목로주점은 단속이 필요해서 반드시 간판을 걸게 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간판에 대한 기술도 발달하고 간판을 만드는 화가나 대행업자는 상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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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인쇄술 개발과 인쇄물 광고의 출현

근대적 의미의 책은 문자가 출현하고 3,500년이 지난 이후였습니다. 종이와 같이 다루기 쉬운 재료들 그리고 문자와 텍스트(text) 사용의 발달이 뒷받침되어 가능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책이라고 본격적으로 부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필사작업과 손으로 성경책을 제작하던 인내심 많은 수도원의 필경사(또는 수도사)들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판 인쇄와 금속 활자를 사용한 기술 혁신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사작업과 손 제작’을 ‘인쇄기를 사용한 대량 생산 방식’으로 바꾸는 길을 열었습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은 한국에서 목판 인쇄술과 금속 활자의 탄생이 신라시대 불교의 융성과 관련된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쿠텐베르그의 인쇄 기술 혁신은 중세 가톨릭 교회에 반기를 든 종교 개혁을 계기로 한다는 점입니다.

최초의 인쇄술은 목판 인쇄로, 한 장의 종이를 나무로 깎은 판으로 인쇄하는 것이었습니다. 목판 인쇄술은 유럽에도 알려져 성경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작은 글씨를 깎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고, 글을 못 읽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글을 현저하게 줄이고 그림 위주로 만든 ‘난뱅이의 성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인쇄(印刷)는 글과 그림을 찍어내는 과정이며, 대개 프레스기를 이용하여 잉크를 사용해서 종이에 찍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로 704년 ~ 75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가 집권했을 때에만 사용되었던 무주제자가 발견되어,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수되기 이전에 인쇄되었다고 인정됩니다.

  • 600 : 책 인쇄 시작 _ 중국
  • 676 : 종이와 잉크의 사용 _ 아랍과 페르시아인
  • 770 : 일본에서 《백만탑다라니경》을 목판 인쇄하다.
  • 751 : 목판인쇄술의 등장 _ 한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석가탑.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은 751년경에 신라에서 찍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8세기 중엽에 두루마리 형태로 간행된 목판본 책자이다.
  • 1234~41 : 금속활자의 발명 _ 한 직지심경요절(고려). 충청북도 청주시의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하다.
  • 1367~1422 : 조선 태종 때 주자소를 설치하여 계미자와 갑인자를 주조하여 활판 인쇄에 활용한다.
  • 1450 : 금속활자+수동식 인쇄기.독일에서 구텐베르크가 1450년에 독특한 활자 인쇄법을 개발하여 인쇄 대중화에 기여하다. 활자에서 인쇄 기계까지 활자 인쇄의 전 공정이 완성된 때는 1500년대경이었으며 최초의 활자본은 1456년에 완성된 성서로서 42행 성서라고도 불린다.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에 두루마리 형태로 간행된 목판본이다. 1966년 10월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다가 발견된 불교 경전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最古)의 목판 인쇄물로 704년~75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에 두루마리 형태로 간행된 목판본이다. 1966년 10월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다가 발견된 불교 경전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最古)의 목판 인쇄물로 704년~75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쇄술 활용의 동서양 근대화의 기로, 종교의 지식(교육) 독점과 종교전쟁, 국민국가의 형성과 교육의 대중화, 기존 교회와 국가에 대한 저항과 언론 자유, 기득권과 검열제도, 사제나 학자 등 특정 계층 이외의 사람들은 대부분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던 기대에는 문자로 인쇄된 인쇄물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은 지식인을 위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문자로 된 책의 양상이 가능해진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민들의 지식 수준이 높아지고 따라서 대량 생산과 광고라는 원칙이 자연스럽게 발생되었습니다.

최초의 인쇄 삐라는 윌리엄 캑스턴의 책인 『솔즈베리의 파이』에 대한 광고가 담긴 삐라였습니다. 카탈로그는 그리스어로 ‘등록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catalogus’가 바뀌어 생긴 말이다. 카탈로그는 처음에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나 물건의 제목이나 품목을 알파벳 순으로 기록한 목록을 의미했다. 뿐만 아니라 1491년 앤트워프에서 만들어진 『기사가 결혼한 인어 아가씨 이야기』라는 책의 삐라에는 삽화가 나와 있어서 이것을 포스터의 효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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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air
  • http://employees.oneonta.edu/farberas/arth/ARTH200/artist/guilds.html
  • https://en.wikipedia.org/wiki/Chivalry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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