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없던 시대, 방송의 역사

1876년 벨의 전화 발명

스코틀랜드에서 1847년에 태어나 미국으로 귀화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유선방식의 음성 통신 장치인 전화를 발명한다. 벨은 청각과학자로서 집안이 웅변술과 언어교정에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전화의 발명은 농아들을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것은 동생이 결핵으로 죽은 충격으로 벨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벨과 그의 형제들은 웅변과 언어 교정을 가업으로 잇도록 훈련받았다고 합니다.

보스턴에 머물면서 벨은 농아들에게 말을 가르치는 방법을 실행했습니다.1866년 『시화법』( Visible Speech)이란 제목으로 출판된 그의 책에는  입술·혀·연구개 같은 소리를 내는 기관의 위치를 나타내는 음성기호가 있어서 농아들이 말소리를 모방하는 데 사용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는 기계수리공이자 모형 제작자인 토머스 웟슨 도움으로 전기로 소리를 전달하는 기구를 고안했고 오랜 철야작업 끝에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876년 3월 7일 미국 특허 사무국은 벨에게 “말소리나 그밖의 소리들을 수반하는 공기의 진동과 유사한 형태의 전기 진동을 일으켜…… 목소리나 그밖의 소리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구”를 포함하는 특허번호 174465를 인정했습니다. 벨이 농아 언어교육을 위한 공헌과 전화기를 개발한 것은 모두 30세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1892년 전화기를 실험하는 그레이엄 벨

1892년 전화기를 실험하는 그레이엄 벨

1878년 에디슨의 축음기 발명

토머스 에디슨이 음성을 기록하는 장치인 축음기(蓄音機)를 발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축음기는 무선 방식에 의한 인간 음성의 전달도 그 실현가능성이 보여준 것입니다. 축음기는 원반 혹은 원통에 홈을 파서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 장치를 가리zlq다. 최초의 축음기는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포노그래프(Phonograph)입니다. 에디슨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디트로이트와 포트휴런 간의 철도 급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기차를 통제하는 데 전신을 사용하여 상업적으로 전신을 이용하기 시작하던 미시간센트럴사를 통해 전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을 통해 수송과 통신을 광범위하게 확대되던 시기에 에디슨은 1863년 견습 전신기사가 되었다. 전신소 일을 하던 에디슨이 송신 속도를 상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우연이 음악처럼 들리는사실을 발견하여 착안하여 음악 기록 장치를 발명하였습니다. 소리를 저장하는 재료로서 주석으로 감싼 원통을 이용했습니다. 그가 소리 관련 장치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모스 부호의 수신에서 점차 소리 전달을 발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선천적 청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이 축음기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데 1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에디슨의 발명으로부터 몇년 뒤 그레이험 벨의 연구소에서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를 개량하여 소리 저장 매체로 주석 대신 왁스를 바른 원통을 사용하는 그래프폰(Graphophone)을 개발합니다. 1887년 에밀 베를린너가 아연 재질의 원반을 매체로 이용하는 그래모폰(Gramophone)을 개발합니다. 초기 그개모폰은 원통형 축음기에 비해 음질이 좋지 못했습니다. 베를린너는 엘드리지 존슨의 도움으로 그의 그래모폰의 음질을 원통형 축음기 수준으로 개선하여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습니다.

2-36

에디슨이 1899년 발명한 포노그래프

에디슨은 축음기를 회전요지경(zoetrope)과 결합하여 상업화하려고 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사진술에 관심을 가진 W.K.L. 딕슨을 고용해 함께 작동 카메라와 보는 기구를 만들었는데, 이 기구는 키네토그래프(Kinetograph)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소리와 사진의 움직임을 일치시키는 일은 실패했고, 결국 무성영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888년 헤르츠의 전자기파 발견

라디오의 역사는 유선 통신에 기반하던 전화와 달리 축음기 같은 음성의 무선통신 기술 발명과 관련됩니다. 1888년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가 처음으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를 발견합니다. 주기적으로 세기가 변화하는 전자기장이 공간 속으로 전파해 나가는 현상으로, 전자파라고도 합니다. 막대기로 수면에 돌을 던지면 떨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물결파가 발생하여 주변으로 멀리 퍼져 나가는 원리와 같습니다. 공기중을 통해 사람이나 그밖의 소리가 전달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하지만 전자기파는 물이 아니라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죠. 헤르츠는 실험을 통해 전기 신호가 공기 중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주로 파장의 길이가 약 1mm 이상인 전자기파를 전파 또는 라디오파라고 부릅니다.

전자기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두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 파동으로, 공간 상에서 광속으로 전파됩니다. 전자기파는 광자를 매개로 전달되며 파장의 길이 따라 전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으로 나뉜다. 인간의 눈에서 인지하는 빛은 가시광선(visible ray)이며, 가시광선을 비롯한 여러 파장의 빛은 전자기파의 일부입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콘텐츠는 전자기파를 활용하여 전달됩니다. 따라서 전자기파의 발견은 방송이 시작되기 이전의 매우 중요한 기술적 단계입니다. 자주 쓰는 주파수의 단위인 헤르츠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2-37
1894년 일렉트로폰사의 전화선 서비스

런던에서는 전화선을 통해 연극, 음악회, 설교 등의 프로그램을 가입자에게 서비스하는 일렉트로폰사(Electrophon company)가 설립되었다. 이 방식은 유선이기는 했지만 라디오 방송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2-38

전화선을 통해 연극, 음악회, 설교 등의 프로그램을 가입자에게 서비스하는 일렉트로폰사의 서비스는 라디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1897년 모스 부호를 활용한 무선 전신 발명

헤르츠의 발견을 기초로 이탈리아 전기공학자인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가 1897년 모스 부호를 이용하여 무선 전신을 발명하여 장거리 무선통신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이탈리아가 그의 발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자 22살 나던 해에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에 걸쳐 있는 식문지와의 효율적인 통신에 부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코니의 개발을 지원합니다. 이 전신기는 전압을 높이는 유도 코일과 불꽃 방전기 등을 이용한 단절적 신호전송이라는 한계점이 있었습니다. 무선 전신 실현된 이후 사람들은 전신을 통한 메시지의 암호화-해독화를 거치지 않고 음성을 직접 전달 하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음성은 매우 복잡한 전자기파의 변동으로 이뤄지는 것이므로 공기가 아닌 전류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변조장치 개발 선결과제였습니다.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모스 부호를 이용하여 무선 전신을 발명한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901년 함선의 무선 통신과 전파에 음성 전달 성공

1901년에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행한 통신에 성공하여 이 부터 무선은 함선을 비롯한 각종 통신에 실용화되고, 1907년에는 유럽과 미국 사이의 공공 통신 사업이 그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1901년은 남북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식민지 쟁탈을 위한 유럽 국가의 갈등과 전쟁이 본격화되던 기기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세계적 차원의 전쟁이었습니다. 같은 해에 캐나다 레지날드 페덴슨(Reginald A Fessenden)이 최초로 전파에 음성을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꾼 뒤 연속 전파와 결합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12월 23일 메릴랜드 주의 콥 아일랜드에 위치한 기지국에서 최초의 무선 음성 송신을 진행하였다. 내용은 눈이 오고 있다면 전보를 쳐서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904년에 마르코니는 1904년 파장조정기 특허를 얻어 수신자들이 원하는 주파수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2-39s

최초로 전파에 음성을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한 레지날드 페덴슨(Reginald A Fessenden)

1906년 포레스트의 3극 진공관 발명

미국의 리 드 포레스트(Lee De Forest)가 전류 증폭을 가능하게 한 3극 진공관을 발명하여 음성 전달 라디오 방송이 가능해집니다. 1906년 12월 24일에 레지날드 페든슨이 진폭 변조를 이용한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였습니다. 방송을 진행한 매사추세츠 주 지역으로부터 수 마일 떨어진 대서양의 선박을 대상으로 목소리로 녹음된 1편의 시, 짧은 이야깃거리, 2곡의 음악을 전송하였습니다. 높은 진공 속에서 금속을 가열할 때 방출되는 전자를(에디슨 효과) 전기장으로 제어하여 정류, 증폭 등의 특성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유리관을 진공관이라 합니다. 미약한 신호에 의한 큰 에너지의 제어, 각종 신호처리 기술이 가능해지도록 하여 전자공학의 발전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진공관은 초기의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수상기와 각종 송신기에 사용됩니다.

2-40s

진공관은 높은 진공 속에서 금속을 가열할 때 방출되는 전자를 전기장으로 제어하여 정류, 증폭 등의 특성을 얻을 수 있는 유리관이다.

1908년 할리우드의 탄생

카메라와 영사시설에 대한 사용특허권은 대부분 에디슨 특허권의 갖고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필름 제작사인 이스트먼코닥사와 계약을 맺고 회사의 인가를 받은 회원에게만 필름을 공급하도록 제한했습니다. 1908년 영화특허회사(Motion Picture Patents Company)사가 설립되자 많은 독립 영화사들이 미국 동부의 강력한 법적 규제와 트러스트 집단의 견제를 피해 남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동부에서는 촬영 기술과 관련된 특허에 대한 통제가 매우 강화된 상태였습니다. 미국 서부 지역에 헐리우드가 형성된 것은 저작권에 대한 통제력이 미치기 힘든 곳이라는 지역적 특징 때문입니다.

1907년의 할리우드 풍경

1907년의 할리우드 풍경

1909~11년 파리 에펠탑의 음성 송신

1909~11년 파리 에펠탑에서 유럽 최초로 음성 송신을 합니다. 이듬해인 1910년에는 카루소의 노래를 방송하였으며, 1911년 뉴욕의 선거결과를 방송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산호세 KQW, 디트로이트 WWJ, 피츠버그 KDKA 등 여러 실험방송이 계속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Graham_Bell
  • https://en.wikipedia.org/wiki/Thomas_Edison
  • http://catsmeatshop.blogspot.kr/2010/11/electrophone.html
  • http://en.wikipedia.org/wiki/Guglielmo_Marconi#mediaviewer/File:Guglielmo_Marconi.jpg
  • https://en.wikipedia.org/wiki/Reginald_Fessenden
  • https://en.wikipedia.org/wiki/Vacuum_tube
  • https://en.wikipedia.org/wiki/Hollywood_and_Highland_Center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