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이 만든 자유시장체제와 사회적 변화

영국의 산업혁명과 사회적 변화

단순하게 말하자면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은 농업과 수공업 위주의 경제에서 공업과 기계를 사용하는 제조업 위주의 경제로 변화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이 과정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까지(1760년~183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 혁신을 통해 시작되지만 그 혁신은 정치, 사회, 경제, 산업, 문화, 예술, 생활 등에 걸친 큰 변혁을 불러일으킵니다. 산업 혁명은 후에 유럽에서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전 세계는 유럽 중심의 산업혁명의 영향을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풍부한 지하 자원,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식민지 지배 등을 통해 자본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영국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일찍 여러 혁명을 거치고, 봉건제가 해체되어 정치적인 성숙과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이전보다 자유로운 농민층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농촌에서는 모직물 공업이 많이 발달하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근대적인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18세기에 들어서 영국과 그밖의 나라들에서 면직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 기관(蒸氣機關)을 개량해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이를 산업 혁명의 출발점으로 봅니다. 그 후 면직물 공업이 산업 혁명을 주도하게 됩니다. 산업 혁명 중에는 기계가 무수히 발명되었다. 이 때부터 기계는 생산력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산업 혁명이란 용어는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가 『영국산업혁명 강의(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서 처음으로 사용합니다.

증기 기관은 외연 열기관으로, 수증기의 열에너지를 기계적인 일로 바꾸는 장치입니다. 1705년 영국의 발명가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이 발명했고, 1769년에 제임스 와트가 개량했습니다. 기계작동을 위해 끓는 물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는 2,0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 장치들은 실용적인 동력 발생로들이 아니었지만 설계가 진보함에 따라 유용한 동력을 발생시킬 수 있게 되어 지난 300년동안 기계 동력의 주요한 근원이 되었는데, 최초의 응용 예는 진공 엔진을 이용한 갱내 배수였습니다.

6-11s

증기 기관은 외연 열기관으로, 수증기의 열에너지를 기계적인 일로 바꾸는 장치이다. 1705년 영국의 발명가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이 발명했고, 1769년에 제임스 와트가 개량했다.

산업혁명을 만든 몇가지 요소들 : 직물, 증기력, 제철

산업 혁명의 시초는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몇 개의 혁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기술적인 혁신들은 산업 혁명의 비약적 경제 발전을 가져 왔는데 그중 핵심이 직물과 증기력 그리고 제철을 둘러싼 기술이었습니다.

직물(織物)에서는 초기의 발명에 이어 다양한 방적기들이 출현했습니다.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의 수방적기,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의 다축 방적기, 새뮤얼 크롬튼의 뮬 정방기(수방적기와 다축 방적기의 결합체)를 이용한 면방적기 등이 1769년, 특허를 얻었습니다. 플라잉 셔틀(flying shuttle)은 1733년 영국의 존 케이가 처음 발명한 기계적인 위입장치로, 종래의 수직기의 능률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한 손으로 끈을 잡아당겼다 놓기만 하면 북이 좌우로 총알처럼 비주(飛走)하는 반자동식의 위입장치입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바디질, 그리고 한 발로 개구동작을 하게 되고, 특히 광폭수직기에서는 종래보다 4배나 능률이 빨라졌습니다. 이로써 혼자서 폭이 넓은 천도 짤 수 있게 되어, 직조작업이 도구(道具)에서 기계로 이행해 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이것이 사회산업적인 문제로 비화되어 자동방적기를 발명한 동기가 되었으며, 드디어 산업혁명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었습니다.  인력을 더 적게 들이면서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계의 발명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증기력(steam power)은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개선된 증기 기관은 즉시 광산을 퍼내는 데 이용되었지만 1780년대부터는 동력기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수력발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작은 규모의 과거 상황으로부터 능률적인 반자동화 공장의 빠른 발전을 가능케 했습니다. 증기력은 석탄·증기기관·전기·석유 및 내연기관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연료와 동력)의 이용하면서 그 효과를 더욱 크게 만들었습니다. 증기기관차·증기선·자동차·비행기·전신·라디오 등을 포함한 교통과 통신의 중요한 발전이 증기기관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제철(製鐵) 기술입니다. 철·강철과 같은 새로운 기본소재를 새로운 기술로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이 변화는 코크스(cokes)를 이용한 선철의 제련 기술이 개발되어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코크스가 목탄을 대신하여 철 제련 단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구리, 용광로의 선철보다 훨씬 전에 발견되었습니다.

6-22s

1881년과 1868년 독일 산업혁명을 묘사한 그림들. 산업혁명으로 변화한 도시와 공장 내부 풍경을 보여준다.

산업혁명이 만든 사회적 변화

산업 혁명은 경제 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 구조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귀족과 지주 지배 체제가 무너지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선거법 개정을 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활약은 영국에서 노동자의 성년 남성들이 선거권을 요구한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지게 했습니다. 규제가 폐지되면서 점차 자유주의적인 경제 체제가 되었습니다.

공업화로 농촌 인구 대부분은 도시로 갔으며, 도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산업 혁명 때 도시는 석탄 연기로 공기가 나빠졌고, 비위생적이고 악취가 심하며, 사람이 북적대는 불결한 도시로 변했습니다. 노동자 인권 유린도 산업 혁명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고, 소비와 휴식도 제한 받았습니다.

어린이 노동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자본가들은 고아들을 고아원에서 감언이설로 유혹해서 데려와서 일을 시켰으며, 1833년 영국 의회조사에 따르면 지각을 했다고 해서 임금을 깎는 일까지 있어서 영국에서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시켰습니다. 또한 야간 근무를 금지하는 등의 법이 제정되기도 했고, 미국에서는 정부의 탄압과 언론들의 왜곡 보도에도 불구하고, 임금 감축과 장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노동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식사는 빵과 감자가 거의 전부였으며, 거기에 차와 버터 등이 곁들어지는 정도였다.

산업 혁명기 사회 문제 중에는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도 있었다. 노동자 수명은 비위생적인 전염병 때문에 지주 계급보다 훨씬 짧았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6-12s

당시 자본가들은 고아들을 고아원에서 감언이설로 유혹해서 데려와서 일을 시켰으며, 1833년 영국 의회조사에 따르면 지각을 했다고 해서 임금을 깎는 일까지 있어서 영국에서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시켰다.

철학적, 사상적 변화와 자유로운 시장 체제 등장

산업혁명 이전에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장려하지 않았고 교회가 정치적 사회적 기반을 이루며 토지가 경제의 기반이었습니다. 토지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수도원이 소유했기 때문에 일반 대중과는 거리가 있었고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작인으로서 성직자의 가르침에 순종했습니다. 직업은 세습되어 선택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소유욕과 부에 대한 열망은 부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인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청교도주의는 인간의 소유욕을 인정하면서 정직하게 모은 재물의 일정 부분을 사회로 환원하는 기독교 의무를 미덕으로 삼았고 종교개혁은 개인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적 가치관을 제공했습니다. 사회의 철학적, 사상적 변화는 경제적 변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합니다. 철학적, 사상적 변화를 주도하며 대표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출현합니다.

존 로크(John Locke)는 뉴턴의 친구였습니다. 로크는 인간을 원자와 같은 개념으로 보고 원자가 모든 물질의 기본 입자이듯이 인간을 사회조직의 기본 단위로 삼는 인간백지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자유의 핵심적 역할과 이를 토대로 등장할 자유시장의 당위성을 설명합니다. 부를 위한 경제활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가치가 인간 합리성과 이성을 믿는 계몽주의 관점과 어우러져 인간의 이성을 통해 경제질서도 자율적으로 형성되고 통제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자유로운 시장에서 질서를 확립하는 원동력은 경쟁이라고 보았습니다. 천성적으로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개인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여 정부와 소수 권력자가 시장을 지배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개인의 합리적인 이익 추구 활동이 경제질서를 유지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은 정부의 간섭이나 규제에서 자유로워져 시장 경쟁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장 중심의 경제가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적절한 정보의 확산과 흡수가 필요하며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경쟁자와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화, 수요 형태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파악해야 완전한 경쟁 시장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소비자에게 공급된 정보가 광고입니다.

6-13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참고로, 우리나라는 봉건 왕조의 지배채제에 있으면서 산업혁명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 자료들은 조선 후기에 맹아적 형태의 공장식 조직과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과 송상, 만상 등 상인 조직들의 광범한 관계와 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이루거나 봉건적 지배질서를 변화시킬 수준으로 자본가들이 충분히 형성되지도 못했으며 산업혁명을 진행할 만한 기술적, 사회적 수준에도 지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조선 말기 실학자들처럼 새로운 철학과 사상이 발생했지만 사회적으로 확산되거나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봉건적 경제체제를 지닌 채 산업혁명을 마치고 식민지 쟁탈전에 들어간 제국주의들의 침략과정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진 출처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