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성장과 근대 광고의 발달 과정

부시코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백화점

백화점은 부시코(Aristide Boucicaut)에 의해 1838년 르봉 마르세(Au Bon Marché)라는 이름으로 파리에서 처음 열었다. 그는 포목 소매상을 1852년 공동으로 개점하여 그 시대 소매점의 전통적인 방법과는 정반대의 원리를 도입한다. 대부분의 소매 상인들은 상품에 가격을 붙이지 않고 손님과 가격 흥정을 하거나 깎으려는 노력으로 거래가 된다. 그는 정찰제를 도입하여 흥정 없이 상품을 제공하여 모든 손님이 같은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게 하였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가게를 나가는 압박감을 덜어 손님에게 비교하여 사게 하기(comparison shopping)의 즐거움과 습관을 갖게 하였으며 손님이 산 물건을 교환하거나 대금을 반환받을 권리를 인정했다. 또한 대량 판매와 이윤을 낮추어 가격을 낮추는 방식을 취했다.

정찰제를 실시하고 상품의 회전율을 높여서 판매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백화점은 대규모 도매상과는 달리 소량의 제품을 판매해서 짧은 시일 내에 제품을 완전히 판매하거나 재고를 국소화해 항상 새로운 제품을 진열한다. 유행을 선도하는 공간이 된 백화점은 상품이 개인의 가치와 수입의 지표가 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유행하는 제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이용하기 시작하여 신분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게 가능한 중산층에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백화점은 매우 중요한 광고주가 될 수 있었다. 백화점들은 신문에 광고하면서 납품업체나 제조업체에게 광고 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하도록 요청하는 협력광고를 기획하여, 전국 규모의 브랜드 생산기업들에게 광고비를 공동으로 부담할 것을 보편적 현상으로 정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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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파리의 백화점 풍경

백화점과 소비 문화와 존 워너 메이커의 광고 관점

1890년대 말에 등장한 백화점은 1910년경에 전국적인 체계를 갖춘 소매업으로서 성장한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제공하는 시각적 소구에 주력하여 쇼핑을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의무가 아닌 즐거운 활동으로 바꾸어 놓는다. 백화점은 교회 갈 때 옷을 잘 차려 입고 가며 상류층들이 모이는 공공장소가 되며 점원들도 상류층 여성을 고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백화점을 화려하게 하는 쇼윈도, 거울, 조명, 색색의 천 등은 에디슨의 전기 발명과도 관련된다. 소비를 상품 구입활동을 넘어선 즐거운 활동이라는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주요한 고객은 상류층과 중산층이며 사회 전반에 소비를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여가와 오락의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는 세계 최대의 점포 소유주인 존 워너 메이커가 백화점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광고를 메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는 광고는 단지 무엇을 팔기 위해 알리는 것이 아니라 파는 물건을 세상 사람들이 화제로 삼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했다. 철도 연선에 100피트짜리 입간판을 만든다든지 6마리의 말이 끄는 대형 마차에 피리를 부는 한 남자를 태운다든지, 철도의 문 위나 천장에 광고를 내거나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1876년 5월에 워너메이커는 50만달러 어치의 상품을 진열한 새로운 상점을 열었다. 박람회 이후 오늘날의 백화점(department store)이라는 이름의 워너메이커 시스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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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워너메이커는 광고는 무엇을 팔기 위해 알리는 게 아니라 파는 물건을 세상 사람들이 화제로 삼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했다. 따라서 철도 연선에 100피트짜리 입간판을 만든다든지 대형 마차에 피리를 부는 한 남자를 태운다든지, 철도의 문 위나 천장에 광고를 내거나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새로운 기술 환경과 근대적 광고의 등장

20세기 초에 근대성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가 지향해야 하며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 시기에 다양한 슬로건과 이미지를 통해 나타나는 근대적인 것들 중에 두드러진 것은 대량생산이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합리성으로 자연을 통제하며 기계화를 통해 인류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광고는 대량생산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근대성을 강조하면서 공장의 열악한 환경이나 노동자 현실은 배제된 채 소비의 즐거움을 부각하고 대량생산에 우호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물질주의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00년대 초의 광고에는 혁신적인 생산방식과 새로운 삶을 강조하면서도 메시지에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 할머니와 신제품이 함께 등장한다든지, “분홍색 거품 같은 비합리성으로 가득찬 통”으로 여성을 설명하며 남성은 외부활동을 하고 남성은 가정을 지키며 자녀를 양육하며 남성의 매력을 끌어야 하는 성적인 대상으로 광고에 투영된다.

가정에서 만들던 비누의 공장 생산의 청결을 필수적인 항목으로 인식시키고, 치약이 상품화되면서 광고는 사람들에게 양치 방법을 교육시킨다. 질레트(Gillette)사는 면도하는 법을 팜플렛으로 만들어 남성의 일상으로 자리잡게 한다. 또한 카메라, 망원경, 음반 등이 발명되고 상품화된다. 에디슨의 전기와 자동차가 도입되고, 1908년 전기 다리미, 1909년에 청소기와 식기 세척기 등이 발명되었다. 연이어 토스터기, 커피주전자, 전구 등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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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질렛트 면도기 광고

광고 대행사의 발전

1880년대에서 1900년대까지 미국 기업들의 광고예산은 4,000만달러에서 9,600만 달러로 두배 이상 증가한다. 대행사들은 이 시기에 지변을 중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디자이너와 카피라이터 등을 고용하면서 시장 조사, 홍보 행사 등과 같은 서비스 영역을 확대한다. 당시 대부분의 신문에서는 광고료가 1년 단위라는 계약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날과 같은 광고 대행업(advertising agent)은 미국에서 발달했다. 개별 신문사에 소속되어 광고를 모았던 세일즈맨이 독립한 것이 발단이었다.

1841년 존 L. 후퍼(John L. Hooper)는 광고를 낼 수 있는 유력한 상점이나 사무소를 방문하여 광고의 필요성을 설득하며 동의하면 무료로 견적을 내주고 자신이 추천하는 신문사 목록으로 협상하는 방법을 취한다. 그는 후에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광고 대행사 중에 하나인 에이서(Ayer)사의 선조가 된다. 조지 로웰(George Rowell)은 에이어 앤드 선(Ayer & Sun) 대행사를 설립하여 공개계약제를 도입한다. 지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던 방식에서 벗어나 신문사와 광고주에게 지면 구매 가격과 판매 가격을 공개하여 대행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를 15%로 책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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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사인 에이어 앤드 선은 제품명을 유니다로 제안하고 노란 비옷을 입은 소년을 제품 마스코트로 선정하고 광고 슬로건으로 “당신이 잊어버릴지 모르니 우리가 말해드릴게요. 유니다 비스킷을 준비하세요.”라고 정한다.

광고 슬로건의 본격적인 등장

1899년 나비스코사의 유니다(Uneeda) 비스킷은 대행사가 광고 기획하여 과정을 맡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에이어 앤드 선은 제품명을 유니다로 제안하고 노란 비옷을 입은 소년을 제품 마스코트로 선정하고 광고 슬로건으로 “당신이 잊어버릴지 모르니 우리가 말해드릴게요. 유니다 비스킷을 준비하세요.”라고 정하고 신문, 잡지, 포스터, 전차, 옥외광고 게시물 들에 광고를 게재한다. 유니다 광고에 나오는 비옷은 나비코사가 개발한 습기를 막아주는 포장을 상징한다.

1900년을 전후하여 일부 대학이 경영대학을 중심으로 광고 강의를 개설하고 광고 기획, 기획과 제작, 시장조사 등을 교육한다. 광고주를 확보하기 위한 최대 관건은 값싼 지면 구입이 아니라 높은 광고 수준이라는 인식이 전문 광고 교육의 필요성을 유발시켰다. 기초적인 수준이긴 했지만 구매 대중이 누구인지, 대중의 취향과 욕구는 무엇인지, 어떤 광고가 가장 효과적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직접 판매에 나서거나 소비자 사용 실태를 관찰하고 인터뷰를 실시하거나 가장 효율적인 미디어가 무엇인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부터 1890년대에 걸쳐 시작된 슬로건의 유행은 미국 광고의 새로운 특색이 된다. 케네이션 밀크의 통조림에 ‘만족한 젖소로부터’(From Contented Cows)라는 표어가 등장하고 패커드(Packard) 자동차에서는 ‘그것을 산 사람에게 물어 주십시오’라는 말이 회사의 슬로건이 되었다. 슬로건은 반복하여 특정 정책이나 그룹을 연상시키는 문장이나 문구라는 의미이며 이전에는 거의 정치운동에 사용하였고 미국의 광고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가장 성공한 슬로건의 시작은 코닥의 ‘당신은 버튼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책임집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라는 문구이다. 이후 이스트먼이 발명한 필름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트먼이 아니라면 코닥이 아닙니다’(If It Isn’t an Eastman, It isn’t a Kodak.)라는 슬로건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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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최초로 가장 성공한 슬로건의 시작은 코닥의 ‘당신은 버튼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책임집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라는 문구이다.

아이보리 비누가 ‘물에 뜨는 비누’(It Floats)라는 슬로건과 ‘순도 99.44%’(99 and 44/100 the percent Pure)라는 2개의 슬로건으로 비누업계에 등장하여 세계적인 P&G(Procter & Gamble)의 토대를 만든다. 아이보리는 어린이 특히 아기와 연결시켜 젊은 어머니를 교육하는 이손 저손 광고나 어린이용 만화가 삽압된 광고나 삽화가 들어간 동화 광고에 힘을 기울였다.

자동차의 등장과 옥외 광고의 출현

20세기에 등장한 최고의 소비상품은 자동차이다. 심리적인 거부감도 만만치 않아서 전차와 말을 이용해 수송을 하던 사람들의 반발이 거셌다. 최초의 자동차 광고는 홍보성 기사였으며 관련하여 자동차 경주대화를 열거나 홍보성을 띤 행사와 신문, 잡지를 통한 광고를 병행하였다. “너무 간단해서 열다섯살 소년도 운전할 수 있습니다.”(1903년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라고 광고하며 기차가 가지 못하는 곳까지 갈 수 있으며 말보다 관리하기가 쉬우며 중간에 쉬지 않고도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899년경에 미국 전역에 8개의 자동차 생산기업이 경쟁했으며 1908년에 헨리 포드(Henry Ford)는 포디즘(Fordism)이라고 부르는 기계화된 생산공정을 자동차 생산에 도입하여 T카를 제작하여 850달러의 가격에 출시한다. 포디즘 생산 방식은 세분화된 공정을 통해 노동자가 자기가 맡은 업무만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컨베이어 벨트식 생산 방식이다. 자동차 수가 증가하자 운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옥외광고가 등장하여 중요성이 커지고 타이어, 콜라, 밀크 등 자동차 여행에 필요한 부품과 먹을거리와 관련된 옥외광고들이 등장한다.

잡지 광고의 본격화

당시 신문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이었기 때문에 전국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초기에 잡지는 존경할 만한 잡지의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광고를 게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광고가 늘어나면서 원래의 정체성이 사회 폭로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지자 광고를 허용하고 기사 내용도 다양화하는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국에서는 교육적인 사명을 권장한다는 의미에서 우편료에 특전을 부여하면서 1890년대에 광범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여성, 가정 잡지가 계속 출현한다. 『레이디스 홈 저널』(Ladies’ Home Journal)은 주로 여성들의 관심사를 다루었으며 발간 초기부터 광고 게재에 적극적이었고 따라서 단가를 낮추는 전략을 선택한다. 당시 소수의 엘리트층을 독자로 삼은 다른 잡지들과는 달리 평범한 주부를 대상으로 요리, 육아, 패션, 가족생활 등의 일상 관심사를 다루었다.

1900년 경의

1900년 경의  『레이디스 홈 저널』

사진 출처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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