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과 전쟁 시기의 광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쟁의 시기에도 기업 활동은 여전히 지속된다. 심지어 광고와 마케팅 활동까지도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쟁이라는 상황에 국가 권력과 기업들이 집중하면서 기업들은 전쟁이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시장과 수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이다. 전쟁터에서는 전투가 벌어지지만 전투에 사용되는 무기와 생활용품들은 모두 기업이 국가에게 판매한 상품이며 국가와 정부는 소비자인 국민이 낸 세금과 성금으로 전쟁 물자를 구매하여 전쟁을 수행한다. 이 글은 두 차례 있었던 세계대전에서 광고는 어떠한 특징과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는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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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에서 1918년까지 4년 4개월간 지속된 역사상 최초로 세계 강국들이 모두 참가한 전쟁으로서 식민지 세력권의 확대를 둘러싼 대립에서 비롯된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이다.

역사상 최초의 세계적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 대전(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은 약 4년 4개월간 지속된 최초의 세계 대전이다. 최초로 세계 강국들이 모두 참가하였다. 근본적으로는 식민지 세력권의 확대를 둘러싼 대립에서 비롯된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이다. 특히 당시에 세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영국에 대해 독일이 도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영국은 유럽에서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3국동맹에 대립하고 있는 노불동맹(露佛同盟)에 접근, 1904년 영불협상, 1907년 영로협상을 묶어 3국 협상을 형성, 독일에 대항했다. 대립의 초점은 발칸·중근동 지역이었다. 1914년 7월 28일, 14년 6월,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인에게 암살당한 사건을 도화선으로 하여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 포고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일본·루마니아·그리스가 영국 편으로, 터키·불가리아가 독일 편으로 참전했으며, 이탈리아도 전후의 영토확대를 약속받고 3국동맹을 파기, 영국 편에 섰다. 일본은 중국에 있어 이권확대를 노리고 영일동맹을 이유로 내세워 8월 23일 독일에 대해 선전을 포고, 산동성(山東省)의 독일 조차지 청도(靑島)와 독일령 남양제도를 점령하는 한편, 이듬해는 중국에게 <대중(對中) 21개조 요구>를 승인케 했다.

전황은, 전차·비행기 등 신병기에 의한 소모전, 경제력·병력을 모조리 동원한 총력전, 장기전이 되었다. 1914년 8월에 독일은 러시아에도 선전 포고를 벌였으나, 3년 후 사회적 모순을 안고 있던 러시아에서는 17년 11월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듬해인 18년 3월 소비에트 정부는 독일과 단독강화를 맺었다. 독일이 잠수함을 이용한 선박의 무차별 공격으로 미국의 상선들을 침몰시키자, 미국이 참전하였다. 마침내 1918년 독일에서 킬 군항의 해군들의 폭동으로 인하여 빌헬름 2세는 퇴위하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1월 연합국과 독일 간의 휴전이 성립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이 전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주요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등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웠으며 약 900만 명이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엔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제안으로 국제 연맹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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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세계 규모의 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제2차 세계대전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세계 규모의 전쟁이 벌어진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이 1939년 9월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한 것으로 시작된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사실상 끝이 났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이었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3천만 명에 달했다.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 시민을 살해하고, 1938년부터 일본인을 비롯한 조선인, 중국인, 동남 아시아인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 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집시, 사회주의자들을 학살했다.

한때 독일은 유럽 거의 대부분과 소련 서부 지역까지도 점령했다. 점령에는 실패했지만 영국에 대해서도 총공격을 개시했다. 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폭격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 같은 해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고, 영국공군과 미국 육군항공대는 드레스덴과 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과 상관없는 민간인들의 피해도 심했다.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변동이 나타났다. 전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을 중심으로 1945년 10월 24일 국제연합이 창설되었으며, 전후 경제 질서의 회복을 위해 1944년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달러가 세계의 기축 통화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가 성립하였다. 소련 군대가 주둔한 동유럽, 외몽고, 북한 등에 공산주의정권이 들어섰고, 중국에서도 중국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세계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동유럽,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으로 재편되었다. 또한 1960년대까지 패전국의 지배 아래 식민지 상태에 있던 나라들도 상당수가 주권국가로 독립을 이루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광고인들의 활동

정부기관이나 적십자 등과 같이 광고 활동과 관계 없는 기관들이 대형 광고주로 등장하며 일반 기업은 국민 정서를 고려해 상품 광고를 최소화하고 주로 애국적인 광고 메시지를 전달하여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쌓고자 했다. 광고대행사 중에서 선두 주자들이 만든 전쟁자문위원회는 정부가 전쟁자금을 조달하고 병사들을 징집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후에는 정부 홍보기관의 일부로 편입되어 전쟁 명분을 정당화하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는 데 기여했다. 많은 제조기업이 소비재 생산에서 군수물자 생산으로 전환을 시도해 군산복합체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전쟁채권판매, 육군과 해군 모집, 군수산업 종사자의 사기 증진, 식량과 자원의 절약 촉진 등 전쟁을 수행하는 데 역할을 한다.

군대에 지원할 것을 촉구하는 엉클 톰의 광고와 성녀 이미지를 간호사에게 적용한 적십자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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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이후 광고와 상품 시장의 변화

제1차 세계대전 중 광고인들이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간 형성되어 있던 기업에 대한 불신을 상당 부분 해소하게 되었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활습관을 변화시키고 특정 정책 노선이나 주의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을 창고하는 등 애국적인 행위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전쟁을 거치면서 광고인들은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사회적 승인을 받게 되었다. 전시활동에서 얻은 교훈은 술이나 담배와 같은 각종 기호식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에 적극 도입된다.

1918년 전쟁이 끝나자 기업들도 전명 광고를 도입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승전국들에게 경제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미국도 전쟁을 통해 거대 산업국가가 된다.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기업의 대대적인 노력으로 상품이 넘쳐나고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가하고 가계소득이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에 소비 추구 분위기가 확산된다. 전쟁 시기에는 여성이 남성 인력을 대치하면서 여성이 경제력이 획득되면서 화장품, 실크, 스타킹 등 여성을 상대로 한 상품이 등장하고 여성 흡연을 장려하는 광고라든지 가정 필수품이 된 사적 위생 부분의 상품들이 제공된다.

전쟁 때 개발된 기술은 전쟁이 끝나면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어 신상품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낙하산을 만들던 나일론이 스타킹으로 제품화되고 레이더 기술은 전자레인지로 상용화된다. 1910년경에는 더 많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할부판매가 도입된다. 이 제도는 낭비와 사치의 개념으로 인식되어 기피의 대상이 되고도 했는데 자동차나 재봉틀, 가전제품, 모피 코트, 가구 등 같은 고가의 소비재가 대량생산되면서 신용구매가 권장되었다. 관련하여 경제성장, 기업 규제 완화, 소비에 대한 관용적인 사회분위가가 어우러져 광고가 1919년에서 1929년까지 150%나 증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광고인들이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간 형성되어 있던 기업에 대한 불신을 상당 부분 해소하게 되었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활습관을 변화시키고 특정 정책 노선이나 주의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을 창고하는 등 애국적인 행위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전쟁을 거치면서 광고인들은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사회적 승인을 받게 되었다. 전시활동에서 얻은 교훈은 술이나 담배와 같은 각종 기호식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에 적극 도입된다.

1918년 전쟁이 끝나자 기업들도 전명 광고를 도입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승전국들에게 경제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미국도 전쟁을 통해 거대 산업국가가 된다.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기업의 대대적인 노력으로 상품이 넘쳐나고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가하고 가계소득이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에 소비 추구 분위기가 확산된다. 전쟁 시기에는 여성이 남성 인력을 대치하면서 여성이 경제력이 획득되면서 화장품, 실크, 스타킹 등 여성을 상대로 한 상품이 등장하고 여성 흡연을 장려하는 광고라든지 가정 필수품이 된 사적 위생 부분의 상품들이 제공된다.

전쟁 때 개발된 기술은 전쟁이 끝나면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어 신상품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낙하산을 만들던 나일론이 스타킹으로 제품화되고 레이더 기술은 전자레인지로 상용화된다. 1910년경에는 더 많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할부판매가 도입된다. 이 제도는 낭비와 사치의 개념으로 인식되어 기피의 대상이 되고도 했는데 자동차나 재봉틀, 가전제품, 모피 코트, 가구 등 같은 고가의 소비재가 대량생산되면서 신용구매가 권장되었다. 관련하여 경제성장, 기업 규제 완화, 소비에 대한 관용적인 사회분위가가 어우러져 광고가 1919년에서 1929년까지 150%나 증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광고대행사의 역할 변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에는 광고대행사들은 더 과학화되고 전문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광고가 소비자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세계대전 후에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마케팅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심리학자와 사회과학자 등을 고용해서 마케팅 조사를 발전시킨다.

영 앤드 루비캠(Young and Rubicam)는 조지 갤럽(George Horace Gallup) 교수를 영입하여 마케팅 조사 부서를 신설하고 수십개 지역에 400여명의 조사원을 고용하여 광고의 성공과 이유에 대해 조사한다. 또한 집자 수용자 조사, 라디오 프로그램 수용자 반응조사 등의 미디어 수용자 조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조지 호러스 갤럽(George Horace Gallup, 1901년 ~ 1984년)은 미국의 심리학자이다. 여론의 통계적 조사법의 창시자이다. 아이오와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후, 트레이크·노스웨스턴·콜럼비아 대학에서 신문학 및 광고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광고 대리업을 경영하고 상업 조사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1935년에 갤럽 여론 조사소를 창립하였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 선거 승패의 예상 적중으로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대조사망과 과학적인 조사 기술에 의해 세계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JWT는 헬렌 랜스던(Helen Lansowne)이라는 여성 카피라이터를 고용하여 여성과 관련된 기업의 소비자에 대한 통찰력과 탁월한 카피로 JWT의 고객인 우드버리(Woodbury) 비누를 1910년 8년에 걸쳐 10배나 신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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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호러스 갤럽(George Horace Gallup)은 미국의 심리학자로서 여론의 통계적 조사법의 창시자이다. 광고 대리업을 경영하고 상업 조사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1935년에 갤럽 여론 조사소를 창립하였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 선거 승패의 예상 적중으로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광고의 변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광고 메시지의 주된 내용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였다. 미국이 1941년 참전을 결정했을 때 공황의 긴 불황에 빠져 있던 기업과 대중은 참전을 반겼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공장들은 조업을 중단하고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42년 광고계는 제1차 세계대전 때처럼 전시광고자문위원회(War Advertising Council)를 만들어 광고로 축적해온 설득 비결과 인적 자원을 정부에 제공한다. 상품광고가 자취를 감추고 승전을 위해 기업이 열심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대중에게 호감을 사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업들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캐딜락(Cadillac) 자동차 기업는 ‘공격의 선봉대’라는 슬로건으로 미국 국기가 붙은 탱크나 힘차게 날아다니는 전투기 군단을 보여주며 점단무기에 캐딜락 부품이 사용되었음을 강조했다. 텍사코(Texaco) 정유회사는 자사에서 가공한 원유가 전투기용 연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여성 항공기 조립공을 광고에 등장시켜 여성들이 군수산업에 참여애인을 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광고 아랫단에는 연료와 타이어를 절약하기 위해 운전 속도를 늦추고 전쟁채권을 구입하도록 독려하는 메시지를 첨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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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채소 통조림 기업은 병사들에게 보낼 채소를 위해 후방의 대중들은 집 뒷마당에 ‘승리의 정원’을 만들어 키우도록 장려했다. 그리고 전화회사 벨(Bell)은 병사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국제전화 자제를 호소했다. 전시광고자문위원회는 에너지 절약, 안보, 근검을 강조하는 광고를 실시하여 “자동차를 혼자 타고 간다면 히틀러를 태워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는 위협적인 내용을 강조했다. 1940년에 포스터들을 보면 “부주의한 잡담이 생명을 앗아간다”(careless talk costs lives)는공동의 슬로건을 사용하여 생활 공간의 곳곳에 스파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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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정보 전달에서 감정적 설득으로

20세기 초 대다수의 광고는 제품 중심적이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도 객관적 정보 전달을 위주로 공지 형태를 띠는 광고가 많았다. 그러나 1920년대 중후반의 광고는 가족 활동, 사회적 성취, 굴욕적인 순간 등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정서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광고가 심리적인 만족감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전쟁기의 경험과 관련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상황에서 집권한 히틀러는 여류 감동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atahl)을 이용하여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찬양하고 히틀러를 신격화하는 영화를 제작했다. 특히 1934년에 완성한 영화 <의지의 승리>(Triump of the Will)은 역동적인 카메라 샷과 화려한 편집 기법, 바그너 음악 등을 적절히 배합해 히틀러의 명분을 미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영화가 대중에게 미친 힘을 목격한 광고인들은 광고 메시지의 정서적인 측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게 되고 감정적 설득에 상당한 관심을 할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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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시기 광고에 등장한 새로운 여성상, 나사공 로지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광고에서 여성의 모습은 씩씩하고 의지가 넘치는 모습을 제시하여 후방에 있는 여성들이 전쟁을 위한 활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방법은 가정에 있는 여성을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생산공장에 여성을 모집하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은 대중문화 영역을 통해 설득한 것이다. 영화 <나사공 로지>(Rosie the Rivetter)는 여자도 훌륭한 항공기 조립공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 이전에는 성적인 매력이 넘치고 가정에 머무르면서 가족에게 헌신하던 여성에서 남성처럼 힘든 육체적 노동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여성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여성이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대중문화 전반에 다시 확산시킨다. 전장에 참전했던 남성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때의 전략이 ‘죄책감에 의존하기’로서 ‘아기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의 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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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광고에서 여성의 모습은 씩씩하고 의지가 넘치는 모습을 제시하여 후방에 있는 여성들이 전쟁을 위한 활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방법은 가정에 있는 여성을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

사진 출처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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