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광고 크리에이티브 혁명기

광고 크리에이티브(advertising creative)란 무엇인가

광고활동 중에서 광고의 제작 표현행위를 창조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크리에이티브라고 말한다. CR로 부르기도 하는데, 시장조사와 미디어믹스의 과학적 활동에 상대적인 개념이다. 상품 서비스에 있어서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여 아이디어를 발상하여 소비자에게 어떻게 소구할 것인가의 콘셉트를 만들고, 구체적으로 문장화·시청각화·영상화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광고 제작자를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따라서 광고 창작과정은 광고기획을 통해 나온 아이디어를 제작을 통해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광고 활동에서 광고 크리에이티브는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원칙에 의해 다듬어져야 하고 이 커뮤니케이션은 마케팅 목표와 전략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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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신문과 라디오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강력했으며 영화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급격한 TV의 확산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1960년대 크리에이티브 혁명의 배경

1960년대는 신문과 라디오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강력했으며 영화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급격한 TV의 확산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TV와 방송 프로그램은 미디어를 통한 영상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라는 전에 없던 상황을 형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급속한 산업 발전 그리고 소비 사회의 성장이라는 환경에서 광고 포화전략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는 동기 조사, 시장 조사, 소비자 조사 등이 광고의 주요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창의성의 빈곤으로 이어졌다.

레오베넷(Leo Burnett),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빌 번바크(Bill Bernbach) 등 광고철학의 소유자들에 의해 새로운 광고 설득 방식이 개발되고 1960년대에 꽃피기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 지어지는 광고 혁명을 크리에이티브 혁명기라고 부른다. 1960년대는 소비사회의 급진전으로 인해서 광고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크리에이티브 혁명이란 단어는 1965년에 처음 등장했으며 광고시장의 팽창으로 도처에서 광고 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게 되었다.

USP 전략의 로저 리브스(Rosser Reeves, 1910~1984)

로저 리브스는 195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광고인이었으며 광고와 소비자간 상호작용에 대해 나름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그가 설립한 테드 베이트(Ted Bates)사는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는 광고 회사이다. 그는 ‘소비자들의 현명한 결정을 방해하는 것은 합리적인 충동이 아니라 넘쳐나는 광고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범람하는 광고 메시지 속에서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으로서 USP(unique selling proposion)’를 제시한다. 그리고 광고의 목적은 판매에 있다고 보았다.

산만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정보가 특정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브스는 “빠른 통증 제거(Fast, Pain, Relief)” 하나의 메시지를 집중하여 반복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핵심 메시지에서 관심을 분산시키는 창의적인 요소를 악마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USP 전략은 광고될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진실로 독특한 내용을 발견해 제시하는 전략이다. 만약 고객의 제품이 경쟁사 제품과 다른 점이 없고 USP를 만들어내기 위해 제품에 변화를 주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대중에게 제시할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제품 자체의 독특함이 아니라 주장의 독특함을 중시했다.

단일한 정보에 집중하고 반복한다는 방식을 개발한 것은 리브스의 성장 과정과 관련되었다고 판단된다. 리브스는 1910년 감리교 전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책벌레였던 그는 열 살 때 소설과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신문이나 잡지에 간간이 작품을 발표하는 등 문학적 소양을 갖춘 청년이었다. 카피 라이터는 카피를 통해 소비자의 구매행동을 이끌어 내야 하며 그렇지 못한 카피라이터는 실력이 없다는 것이 리브스의 소신이었다. 광고는 공학과 유사한 과학이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업적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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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리브스의 USP 전략은 메시지를 집중하여 반복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광고될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진실로 독특한 내용을 발견해 제시하는 전략이다.

진통제 아나신과 USP 전략 사례

리브스는 아나신이 다른 진통제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가 있는 제품이라고 규정했다, 대대적인 캠페인은 1940년대 라디오를 통해 진행되었다. 리브스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식의 주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활용했는데 리브스는 숫자 3의 힘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포장지에도 “Fast, Pain, Relief” 세 단어를 사용하고 아나신의 효능도 “통증제거, 긴장완화, 불안 감소” 세 가지로 제시했다.

전지전능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의 성우가 “아나신은 의사 처방전과 같습니다. 이 말은 여러 성분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가장 많은 의사들이 처방하는 진통제 아나신, 아나신은 아스피린에 없는 성분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아나신은 통증을 완화시키고 풀어주며 불안을 감소시킵니다”라는 후렴구가 뒤따랐다. 모든 미디어와 프로그램에 융단 폭격식 광고를 내보내어 8개월 만에 1,800만 달러에서 5,400만 달러로 매출이 급증했다.

리브스는 반복적 메시지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많은 의사들이 처방하는”이란 카피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의약 제품의 카피에서 등장하고 있다. 리브스는 제품 특성에 덧붙여 제품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약속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광고 역사에서 USP 전략을 가장 장 구사한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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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스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식의 주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활용했는데 리브스는 숫자 3의 힘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포장지에도 “Fast, Pain, Relief” 세 단어를 사용하고 아나신의 효능도 “통증제거, 긴장완화, 불안 감소” 세 가지로 제시했다.

광고에서 캐릭터를 사용한 레오 버넷(Leo Burnett, 1891~1971)
모든 제품은 타고난 드라마가 숨어있다. 우리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그 드라마를 포착해 믿음이 가는 형태로 제시하는 것

레오 버넷은 광고인의 사명을 이렇게 주장한다. 실물보다 더욱 군침이 도는 케이크 사진이나 손에 닿으면 시릴 듯한 투명한 얼음사진처럼 제품의 매력과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시키는 이미지를 제시해서 소비자에게 제품을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광고조사의 중요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다. 카피라이터의 상상력과 몇가지 기본 원칙에 충실한 광고가 훌륭한 광고라는 믿었다. 그의 대표적인 원칙은 드라마의 발견,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주고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민담 속 캐릭터나 상징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전설과 민담에서 오랜 세월 존재해온 인물이나 시대적 감정구조에 근거해 창조한 친근한 인물을 활용하는 버넷의 방식은 역사에 남을 만한 캠페인을 대거 탄생시켰으며 광고주에게 철저한 신뢰를 보인 것으로도 유명했다.

레오 버넷은 잡화점을 하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여려서부터 부친의 일을 도와 배달 일을 하며 영업과 판촉을 나름의 방법으로 터득했다. 예를 들면 배달 트럭의 차양에 가게 이름을 써넣는다든지 간단한 전단지 제작을 시도했는데 그의 유년기 경험이 광고를 직업으로 선택하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30년대 공황기 광고들이 어리석고 따분하다고 느꼈고 쿠폰 발행이나 무료 증정 같은 판촉도 쓸모 없다고 생각했다. 버넷은 제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 게 광고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또 제품의 독특하고 특별한 점을 찾아내어 진실되고 흥미롭게 제시하는 것이 광고의 역할이라고 평생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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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버넷은 광고인의 사명을 모든 제품은 타고난 드라마가 숨어있다. 우리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그 드라마를 포착해 믿음이 가는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켈로그와 그린 자이언트, 말보르 광고의 사례

켈로그(Kellogg)사의 창립자는 채식으로 인간의 품성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제7안식일의 예수재림교도의 영향을 받아 아침 식사로 베이컨과 달걀 대신에 곡물 시리얼을 상품으로 판매했다. 버넷은 콘 팝스, 콘 소야, 라이스 크리스피 등 다양한 켈로그 시리얼 광고를 맡는다. 버넷은 포장 용기를 광고 미디어화하고 큰 글씨의 제품명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버넷은 모든 상품에는 드라마틱한 매력이 있고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고 굳게 믿었다. 예를 들면 케이크의 드라마는 먹음직스러움이다.

버넷의 크리에이티브 기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민담이나 역사 속에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를 발굴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친숙하고 인간적인 측면을 활용하여 소비자에게 재미를 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독창성 자체를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독창성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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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버넷의 크리에이티브 기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민담이나 역사 속에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를 발굴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켈로그에서 사용한 캐릭터는 호랑이였다.

“단지 남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면 아침마다 입에 양말을 물고 출근해야 한다.”

버넷이 역사나 민담에서 친근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사례는 그린 자이언트(Green Giant), 켈로그 사의 호랑이 토이(Tonny the Tiger), 필스베리사의 도우보이(Dough Boy), 필립모리스 사의 말보르맨 등이다.

36년 동안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광고하는 제품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소비자에게 정직하지 않은 광고를 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 당신이 돈을 버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하고 광고를 만드는 데 시간을 아낀다는 광고를 만들기 위한 열정을 포기한다면 당신의 주된 관심이 훌륭한 광고품질이 아니라 단지 광고의 규모에 그친다면 진실로 창의적인 대행사가 되는 대신 창조적인 대행사라고 말치레를 하는데 그친다면 … 모든 제작진은 엘리베이터 구멍 아래로 뛰어내리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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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넷이 역사나 민담에서 친근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사례는 그린 자이언트(Green Giant), 켈로그 사의 호랑이 토이(Tonny the Tiger), 필스베리사의 도우보이(Dough Boy), 필립모리스 사의 말보르맨 등이다.

이미지를 구매를 위한 광고의 데이비드 오길비( David Ogilvy)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포드에서 교육을 받은 오길비는 미국에 건너와 갤럽(Gallup)사에서 여론조사 업무를 수행한 후 광고 대행사 오길비 앤드 매더(Ogilvy and Mather)를 설립하게 된다.

오길비는 가장 훌륭한 광고는 감동을 주는 광고가 아니라 소비자가 그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광고라고 여겼다. “소비자를 즐겁게 하려는 목적으로 광고비를 지출한다면 만족할 만한 매출을 낼 수 없다. 사람들은 광고주가 텔레비전에 출현해서 던지는 농담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 광고는 반드시 제품이 제공하는 혜택을 보장해야 한다”
오길비는 과학적이고 조사 지향적인 철학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크리에이티브는 철저한 조사의 흔적보다는 감성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광고란 흥미롭고 동시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도 생각했다. 구매란 제품 자체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연상되는 이미지 때문에 발생하며 소비자는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연상되는 이미지 때문에 발생하며 소비자는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산다고 여겼다. 따라서 제품과 적절히 연관되는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 광고인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오길비는 세련된 지성미와 고급스러움, 이해하기 쉬운 어필을 통해 소비자를 올려다보는 태도를 비롯해 해서웨이와 롤스로이스의 고급스런 시각이미지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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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즈 오길비는 소비자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연상되는 이미지 때문에 발생하며 소비자는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산다고 여겼다.

해서웨이 셔츠(The man in Hathaway shirt)의 사례

오길비는 자신의 프레이드마크인 스토리 어필을 극대화해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 정체성도 모호했던 의류 브랜드를 고급 브랜드로 자리잡게 한다. 양복 속에 받쳐 입는 흰색 셔츠를 브랜드화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차별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길비는 셔츠의 디자인을 바꾸기보다는 브랜드명을 새겨넣어서 새로운을 부여한다. 브랜드의 이니셜인 H를 세겨놓아 누가 보아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오늘날의 대부분의 의류 브랜드가 따르는 방법이다. 오길비는 셔츠를 구매하는 사람이 대부분 아내라는 점에 착안하여 여성과 연배가 있는 남서에게 공통으로 호감을 줄 수 있는 모델로서 러시아 출신 조지 랭겔 남작을 섭외한다. 헤이웨이맨은 안대를 하고 매번 다른 설정으로 나타났다. 오버에를 부르고 있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포커 테이블에 앉아 있거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등. 1956년 해서웨이 셔츠는 제품명이나 슬로건 없이 눈에 안대를 착용한 해서웨이 맨 사진만 게재했지만 사람들이 어느 브랜드 광고인지를 알아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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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비의 1956년 해서웨이 셔츠 광고는 제품명이나 슬로건 없이 눈에 안대를 착용한 해서웨이 맨 사진만 게재했지만 사람들이 어느 브랜드 광고인지를 알아볼 정도였다.

카피와 디자인의 조화를 강조한 빌 번바크(Bill Bernbach, 1911~1982)

뉴욕에서 태어난 빌 번바크는 역동적인 그래픽 구성과 콜라주 기법 등 광고 스타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다른 광고인과 구별된다. 번바크는 시각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를 유기적으로 기발한 방식으로 통합하는 독특한 전략을 즐겨 사용해서 뉴 애드버타이징(new advertising) 전통의 광고인으로 평가된다. 번바크는 윌리엄 와인트아우브(William Weintraub)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폴 랜드(Paul Rand)와 근무하면서 광고 컨셉트를 개발하고 디자이너의 이미지를 참고하며 광고의 시각적 이미지 효과를 배가시켰다. 카피의 디자인의 조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로서 2인 1팀 제도는 오늘날 대행사에서 광범하게 채택되는 작업 방식이 되었다.

기존에 광고에서는 카피가 이미지에 우선했다면 번바크가 집행한 캠페인은 카피와 디자인의 조화를 강조했다. 디자이너는 광고의 머리 기사를 카피라이터는 시각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썼기 때문에 간결하고도 직설적인 표현을 끌어 낼 수 있었다, 이런 작업의 결과 웃음을 유발하는 기발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번바크는 자서전에서 인간의 본성은 수십억 년 동안 변한 것이 없고 앞으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며 변하는 부분은 일시적인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은 불변하는 인간의 본성에 주목해 인간 본능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면 광고의 불변의 진리는 오직 하나가 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토대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논리와 지나친 분석은 아이디어를 빈약하게 만들어 죽이고 만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많이 분석하면 할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

번바크는 이미지와 카피의 창의적 결합, 솔직함, 자유로운 경영 스타일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

엘알(El AL) 항공사 : 엘알 항공사는 업계 최초로 제트 프로펠러를 투입해 대서양 횡단 서비스를 시작하는 시기였다. 급유를 위해 중간에 기착할 필요 없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장점이 있었다. “찢어진 바다.”는 “12월 23일을 기해 대서양은 20% 작아집니다.”(Starting Dec. 23, the Atlantic Ocean will be 20% smaller)이라는 카피를 사용한다. 수용자에게 시간 절약이라는 소구점을 분명하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단 한번 게재되었어도 강한 인상을 남겨 예약률을 급등시켰다.

폭스바겐(Volkswagen) : 폭스바겐은 단순하고 미국 자동차와 다르며 신뢰할 수 있는 정직한 자동차라는 것이 번바크의 설명이었다. 따라서 제품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단순함을 핵심 개념으로 가져간다. 큰 것이 지배적이던 환경에서 작은 자동차가 줄 수 있는 실용적인 혜택을 설득력 있게 나열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평가된다.

렌터카 기업 에이비스(Avis) : “우리는 2등 회사다.”(We’re only No. 2)라는 캠페인을 탄생시킨다. 최고와 최상을 주장하는 일반적인 광고 캠페인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광고효과도 뚜렷했다. “No. 1의 태도는 ‘잘못만 하지 마라. 실수만 하지 마라. 그러면 된다’이지만 No. 2의 태도는 ‘제대로 잘해야 한다.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입니다. No. 2가 에이비스의 정책입니다”

1960년대 광고의 특징은 광고의 제작 표현행위를 창조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 부분을 본격화했다는 데 있다

1960년대 광고의 특징은 광고의 제작 표현행위를 창조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 부분을 본격화했다는 데 있다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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