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문자미디어, 점토판과 파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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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출현과 점토판의 사용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디어는 ‘말’(language)입니다. 인간이 지닌 최소한의 소통 방식이자 최후의 소통 방식입니다. 하지만 말은 목구멍을 통하여 나타나는 소리라서 그 장소 그 시간에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문자(文字)는 말 또는 언어를 기록하기 위한 상징 체계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문자는 말을 기록하기 위해 생겨나거나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없었다면 인류의 지식과 생활들이 작성되어 전달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문자는 기원전 3천년 경의 쐐기문자(cuneiform script. 설형문자)입니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책의 기원”이라고 부르는 점토판과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기록된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은 점토판이나 석판에 남겨진 것들입니다. 최초의 책의 기원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과 이집트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대략 BC 30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BC 2600 수메르의 쐐기문자판. 출처_staticflickr

BC 2600 수메르의 쐐기문자판. 출처_staticflickr

고대 수메르인,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 히타이트인들은 깨끗한 진흙으로 점토판을 만들었습니다. 점토판의 진흙이 굳기 전에 철필로 설형문자를 새기고 햇볕에 말리거나 가마에 넣고 구워 만들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햇빛에 말리기만 했다면 점토판은 부서지기 쉬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점토판을 불에 굽는 방법을 사용하였을 텐데, 그렇게 하면 일부러 부수려고 하지 않는 한 좀체로 닳거나 손상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을 남긴 수메르인들의 쐐기 문자의 점토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우리들은 박물관과 인터넷을 통해 기원전 7천년 경의 점토판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메르(Sumer)는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지역으로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곳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기원전 6천년경에 청동기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농경생활을 하는 국가가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메르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메르인은 대략 기원전 7천년부터 이 지역에서 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3천년경에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발견되는 점토판을 통해 이 방법은 그후로도 2,000년 동안 계속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점토판의 쐐기문자들이 해독되면서 수메르 문명의 일부가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 중에는 대사제 루에나가 라가시의 왕 우루카기나에게 보낸 편지가 있어서 그의 아들이 전사하였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생활을 기록한 점토판이 있는가 하면 홍수 이야기와 노아 방주, 인간 창조, 바벨탑에 대한 내용도 있어서 많은 연구자들을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나 소아시아에서 출토된 점토판 기록의 분량이나 특질로 볼 때 제작자들은 보존력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굴된 점토판의 대부분은 개개인의 상거래 관련 서류와 국가의 문서들입니다. BC 6세기경 아랍어와 알파벳이 등장하면서 사용하기에 훨씬 더 간편한 파피루스가 차츰 점토판을 대체하게 되었지요.

종이와 비슷한 최초의 재료, 파피루스

파피루스(papyrus)는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피로스(papyros)인데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종이와 비슷한 재료로서, 같은 이름의 갈대과의 식물 잎으로 만듭니다. 파피루스 식물의 학명은 싸이페루스 파피루스(Cyperus papyrus)인데 보통 2~3m의 크기로 자랍니다. 현재에는 수단 지역의 나일강 상류에만 서식하고 있으나 고대에는 이집트 통치 지역 전역에 무성하여 이집트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 줄기는 문서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물, 매트, 상자, 샌들, 작은 배의 재료가 되었으며 묶어서 건축용 기능으로도 쓰였다고 전해집니다.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그중 문서를 위한 재료로도 사용되었던 셈입니다.

시라쿠사(Syracuse) 근처의 파피루스 숲. 출처_Wikipedia

시라쿠사(Syracuse) 근처의 파피루스 숲. 출처_Wikipedia

파피루스로 문서 재료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종이처럼 만들 때는 겉껍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식물 줄기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껍데기를 벗긴 줄기 속의 부드러운 부분을 얇게 잘라 4~6장 정도 만듭니다. 가로로 주욱 한 번, 세로로 다시 한 번 겹쳐 뒷면을 세로로 놓고 전체를 강하게 두들겨 가로와 세로를 겹쳐서 물에 담가두면 자연스럽게 고무즙이 스며들어 서로 밀착됩니다. 파피루스에 삼베 같은 느낌의 무늬가 생기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이것을 물속에서 꺼내어 무거운 것으로 누른 채 햇빛에 건조시키면 얇은 종이 형태가 됩니다. 이 방법으로 보통 20여 장의 사각형 파피루스를 하나로 이어 두루마리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에 목탄이나 나뭇가지를 섞어 만든 액체와 갈대 줄기를 비스듬하게 깎아 만든 필기 도구로 문자와 그림을 새겼다고 합니다. 파피루스는 점토판이나 양피지에 비해 내구성이 약했으나 주변에서 손쉽게 재료를 구하기 쉽고 가격이 싸다는 점 때문에 애용되었습니다.

종교 문서인 『사자(死者)의 서(書)』. 출처_Wikipedia

종교 문서인 『사자(死者)의 서(書)』. 출처_Wikipedia

나일강 삼각주에는 이 식물이 풍성하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최소한 초대 왕조 이전에 파피루스의 사용법을 개발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파피루스를 재료로 책 이전 형태인 코덱스(codex. 책 같은 형태의 고문서)를 만들었기 때문에, 파피루스라고 부릅니다. “Papyrus”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페이퍼(paper)의 어원입니다. 현재 발견되는 파피루스 문서에서는 명령, 보고, 회계, 의학, 기도문, 세속 문학, 설계도 등이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으며 다양한 그림이 텍스트와 함께 작성된 ‘사자(死者)의 서(書)’와 같은 종교문서도 있습니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 시대 관 속의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에 관한 안내서로서 파피루스에 그 교훈이나 주문(呪文)이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집트 왕들은 내세에도 최고의 신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피라미드의 현실(玄室)과 벽에 주문과 부적을 새겼던 것이지요. 귀족이나 부자의 관 속에 죽은 후의 행복에 관하여 작성한 것도 있습니다.

후에는 주문에 의지하여 내세의 행복한 생활을 얻으려 했으나, 현세에서 선행을 쌓지 않으면 내세에 갈 수 없다는 사상이 나타나 죽은 이에게 이 사실을 가르칠 문구를 파피루스에 작성하여 관에 넣었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과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종이 이전 커뮤니케이션 재료의 역사 2편이 다음회에 이어집니다.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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