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누스 토발즈, 재미있고 위대한 공유

21살의 청년이 시작한 리눅스 혁명

공유 경제의 원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가치가 더 커지고 새로운 가치가 생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1991년 21살의 청년, 리누스 토발즈(Linus Benedict Torvalds)는 그의 작은 침실에서 1만줄 정도 되는 소프트웨어 소스를 무료로 공개한다. 작은 침실에서 만들어져 세상을 향해 터진 핵폭탄 리눅스 커널(kernel, 핵심 구성 요소)의 첫 번째 버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전세계, 심지어 남극의 연구실과 지구 밖 NASA의 우주 정거장까지 수억 명이 사용하고 있는 리눅스 운영체제(Linux OS)는 그렇게 시작된다.

컴퓨터를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운영체제는 영혼에 해당된다. 영혼에 기반하여 지식을 습득하며 육체가 성장하고 건강한 사회 활동이 이루어진다. 운영체제는 컴퓨터 시스템을 제어하는 핵심이다. 훌륭한 운영체제를 통해 모든 소프트웨어들이 작동한다. 운영체제가 자리를 잡으면 하드웨어들과 결합하여 수많은 소프트웨어들이 참여하면서 하나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형성한다. 애플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가 그 역할을 했다. 따라서 훌륭한 운영체제를 개발한 사람은 IT 생태계의 주인공으로서 엄청난 부를 거머줄 수 있었다.

그런데 리누스 토발즈는 소스 전체를 자유 소프트웨어로서 무료로 공개했다. “얼간이.” 리누스는 자신의 책 『리눅스, 그냥 재미로』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을 “얼간이”로 표현했다. 리누스는 얼간이인가. 코드를 공개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면서 리눅스 커널의 소스 공개에 흥미를 느낀 프로그래머들이 하나둘씩 시작하여 수많은 이들이 리눅스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리눅스를 개선하고 온라인을 통해 서로 토론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이어지면서 리눅스는 내용과 성능은 크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1년 후에 발표된 버전 0.96의 소스 코드는 4만 줄 정도로 커졌고 2012년을 즈음해서 1,500만 줄을 넘어섰다. 현재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를 충분히 위협하고 있으며, 스마트 디바이스를 석권하고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또한 리눅스 커뮤니티와의 협업의 성과이다.

현재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리눅스 커널과 깃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이다.  그는 리눅스 커널 개발 최고 설계자가 되었고, 현재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커널의 플랫폼 독립적인 부분과 인텔 IA-32 아키텍처로 구체화되는 핵심 커널의 컴포넌트들을 관리한다. 저명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리더들에게 부여되는 명예 타이틀직인 자비로운 종신독재자(BDFL, Benevolent Dictator for Life)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리눅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리누스 토발즈는 무엇을 위해 위대한 공유 혁명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그를 ‘자비로운 종신독재자’로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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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의 청년, 리눅스 토발즈는 1만 줄 정도 되는 소프트웨어 소스를 공개한다. 현재 전세계 수억명이 사용하고 있는 리눅스 운영체제는 그렇게 시작된다.

컴퓨터를 처음 만난 얼간이

토발즈는 1969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리누스의 아버지는 공산당원이었으며 어머니는 학생 시절 운동권으로 활동했으며 핀란드 뉴스 에이전시에서 번역가로 일했다. 그의 어머니는 “리누스가 자랄 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세상에 저래가지고 어디 변변한 여자 하나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요”라고 리누스의 어린시절을 회고한다. 지나치게 큰 코에 키가 껑충 크고 비쩍 마른 못생기고 창백한 얼굴. 리누스는 자신에 대해 헝클어진 머리칼, 패션 감각이라고 전혀 없는 옷차림의 소년은 코에 집중되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항상 안경을 끈 괴짜 얼간이였다고  평가한다. 공부는 도통 안 하는 편이었지만 수학과 물리학을 잘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핀란드의 시인인 올레 토발즈(Ole Torvalds)다. 아버지인 닐스 토발즈(Nils Torvalds)는 젊은 시절 구소련의 모스크바에 유학을 다녀왔을 정도로 사회주의에 심취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헬싱키 대학의 통계학 교수였던 외할아버지 레오 발데마 톤비스트(Leo Waldemar Tornqvist)의 낡은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놀 때였다고 회상한다. 외할아버지는 리누스가 열한살 되던 무렵인 1981년에 코모도어 VIC-20을 구입한다.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놀던 기분으로 리누스는 몹시 흥분한다. 코모도어 VIC-20은 가정용으로 나온 최초의 컴퓨터이다.

스크린에 대문자로 “READY”라는 글자가 떠서 커서가 깜박거리며 작동 명령을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상업용 소프트웨어도 거의 보급되지 못하던 시절에  외할아버지나 리누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베이직(BASIC)을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이 컴퓨터의 뛰어난 계산 기능을 사용하여 대학의 슈퍼 컴퓨터로 하던 일들을 집에서 하게 되었다면 리누스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리누스는 외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시키는 대로 프로그램 코딩을 입력하는 일을 놀이처럼 하며 자랐다. 그의 어린시절 컴퓨터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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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누스는 외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시키는 대로 프로그램 코딩을 입력하는 일을 놀이처럼 하며 자랐다. 그의 어린시절 컴퓨터와의 첫 만남이었다.

“프로그램을 자판을 두들겨가며 짜보기 시작했다. 설명을 잘 따라하기만 하면 조악한 그래픽이긴 하지만 화면상에 한 남자를 만들어놓고 걸어다니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단계 더 나가면 화면을 걸어다니는 남자의 색깔을 바꿀 수 있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정말 쉬운 프로그램 작업이었다.” – 『리눅스, 그냥 재미로』

리누스는 직접 자신의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작성한 프로그램은 컴퓨터를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씩 거쳐가는 과정이었다.

10 PRINT “HELLO”

20 GOTO 10

이렇게 쓰면 스크린에 계속해서 HELLO가 뜬다. 지루해서 지워버리지 않는 한 끝없이 계속해서 같은 글자가 뜬다. 그리고 나서는 여동생인 사라를 위해 “SARA IS THE BEST”(사라가 최고야)라는 문구를 띄워 여동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성인이 된 후에도 두고두고 말할 정도의 칭찬을 받기도 한다. 핀란드 헬싱키 아이들이 숲과 들에서 스키나 하키를 즐기는 동안에 리누스는 기계 언어(machine language)로 프로그램을 짜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이 작업은 컴퓨터의 중앙 처리장치(CPU)에서 바로 실행하는 산술적 명령이다. 오히려 프로그램에 빠진 소년의 마음껏 노는 공간이 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컴퓨터와 노는 재미로. 컴퓨터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모든 개발자들이 공감하여 순응하는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 그 시기에 리누스의 부모님이 이혼했다. 그 후 외할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 1년을 투병하다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의 코모도어 VIC-20는 자연스럽게 리누스에게 왔다.

열두살, 열세살, 열네살 머리가 굵어지면서 여느 아이들처럼 또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던 리누스는 더욱더 컴퓨터의 세계에 몰입했다. 발트해 연안에 있는 핀란드는 9월부터 4월까지 지루한 겨울이 이어진다. 우울하게 내려 낮은 하늘과 칼바람이 몰아치는 거리. 리누스는 핀란드의 겨울 만큼이는 우울하게 보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의 작동 원리를 익히며 프로그램 책과 잡지를 읽으면서 지냈다. 그는 “가장 재미있었던 건 독자적인 규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가 수학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은 것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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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어는 CPU가 직접 해독하고 실행할 수 있는 비트 단위로 쓰인 컴퓨터 언어를 말한다. 프로그램을 나타내는 가장 낮은 단계의 개념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기계어는 대부분 어셈블리어를 거쳐 짜여지게 된다.

자유 소프트웨어, 리눅스의 탄생

1988년에 리누스 토발즈는 헬싱키 대학교에 진학했고 핀란드 육군에서 1년간 복무한 뒤 인텔 386  프로세서가 탑재된 IBM 호환 기종의 컴퓨터를 구입한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운영체제인 MS DOS에 만족하지 못한다. 학교의  메인 프레임을 다루면서 익숙해진 유닉스(UNIX)를 설치하기로 마음먹는다.  유닉스는 미국 벨(Bell) 연구소에서 개발된 소프트웨어 개발용의 운영 체제이다. 유닉스는 1969년에 그 원형이 완성되었지만 1973년에 프로그램 대부분이 C 언어로 수정되었다. 동시에 여러 명의 사용자들이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실행을 지원할 수 있게 개발된  대화형의 운영 체제이다. 하지만 유닉스는 당시에 카피당 5천달러나 되었고 개인용 컴퓨터에서 실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리누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나셨다.

리누스는 암스테르담 컴퓨터공학 교수 앤드루 태넌바움(Andrew Stuart “Andy” Tanenbaum)의 운영체제 관련책과 연구들을 분석한다. 그의 책과 활동은 리누스에게 큰 영감을 준다. 태넌바움 교수는  학습을 위한 유닉스 계열 운영 체제인  미닉스(MINIX)의 저자였다. 그 분야에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전산학 교과서의 저자로 유명하다. 1987년 타넨바움은 중앙처리장치로 인텔의 80286을 사용한 IBM PC를 위한 미닉스 (MIni-uNIX)라 부르는, 유닉스 계열 최초의 오픈-소스 운영체제를 개발한다.

이 운영체제는 고급언어인 C로 작성되었다. 그는 운영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길 원하는 학생들을 목표로 두었다. 따라서 부록에 소스 코드를 열거했으며 본문에 상세히 그것을 기술한 책을 썼다. 소스 코드는 플로피 디스크 한 장에 기록할 수 있었다. 세 달 만에, 유즈넷 뉴스그룹(comp.os.minix) 형성되어 이 시스템을 토론하고 개선하는 40,000명의 독자 커뮤니티가 활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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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태넌바움 교수는 학습을 위한 유닉스 계열 운영 체제인 미닉스(MINIX)의 저자였다. 유닉스 계열 최초의 오픈-소스 운영체제를 개발한다. 그는 운영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길 원하는 학생들을 목표로 두었다. 따라서 부록에 소스 코드를 열거했으며 본문에 상세히 그것을 기술한 책을 썼다.

리누스는 새로운 PC에 미닉스를 설치하겠다고 마음먹고는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하면서 169달러의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하고 플로피 디스크 16개 설치를 진행한 다음 입맛에 맞게 미닉스를 수정하고 보완한다. 맨처음에는 학교 메인프레임에 접속하기 위해 만든 단말  에뮬레이터(emulator)를 추가한다. 에뮬에이터는 어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다른 종류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로 모방하여 실현시키기 위한 장치나 프로그램을 뜻한다. 컴퓨터 사용에서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호환성을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된다. 흉내내다(emulate)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리누스가 기계어와 일대일 대응이 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저급 언어인 어셈블리 언어(Assembly language)를 통해 하드웨어에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미닉스를 수정하였다. 따라서 미닉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작업 풍경에 대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목욕 가운을 입고 검은색 블라인드로 햇빛을 가린 채 흉물스런 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낡아빠진 가운을 입고 단말 에뮬레이터로 이런저런 기능을 하염없이 추가했는데, 그러는 과정에거 엄청나게 많은 기능이 추가되어 어느 순간 새로운 운영체제로 변모해버렸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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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리누스 토발즈의 사진. 1991년 초가을 헬싱키의 긴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모두 10만 줄의 코드로 구성된 리눅스의 뼈대 즉 리눅스 커널을 완성한다.

리누스가 모뎀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여동생은 전화를 걸 수 없었다. 단말 에뮬레이터로 메인프레임에 접속이 가능하게 한 다음 파일을 올리고 내려받기 위해 디스크 드라이브와 파일 시스템 드라이브를 만들었다. 하나의 운영체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처음에 리누스 토발즈는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프리(free)와 프리크(freaks)와 유닉스를 연상시키는 프릭스(Freax)라고 이름 지으려고 했다. 결국 자신의 이름과 비슷하게 리눅스(Linux)라고 이름 붙였다. 1991년 초가을 헬싱키의 긴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모두 10만 줄의 코드로 구성된 리눅스의 뼈대 즉 리눅스 커널을 완성한다.  그는 이 프로그램 소스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GPL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GPL, General Public License)
GNU라고도 하며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만든 라이선스이다. 리눅스 커널이 사용 허가에서 GPL을 적용하고 있다. GPL은 가장 널리 알려진 카피레프트 사용 허가이다. 이 허가를 가지면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서, 그렇게 개발된 프로그램에 대해 카피레프트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GPL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자유 소프트웨어의 권한을 주어 카피레프트를 사용한다. 그러한 자유가 보전되고, 이전 작업 내용을 수정하거나 다른 내용을 추가하는 것도 허용됐다. 반면에 GNU 약소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The GNU Lesser General Public License, LGPL)는 이를 변형하여 더 허가된 형태이다.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GNU 소프트웨어에 대한 문서의 사용 허가로 시작하였으나 위키백과 프로젝트와 같이 다른 문서 형태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이 허가서는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등에서만 법원의 판단등으로 합법한 허가서로 인정받았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이에 따른 법률적 판단을 받은 바 없다. 한국에서도 이 허가서가 합법한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없었다. 다만 허가서라는 특성상 준법행위를 하는 다수는 분쟁없이 이 허가서의 제약을 따르고 있다.
공유와 협업의 철학이 담긴 오픈 소스, 리눅스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은 리눅스의 얼굴이 새겨진 다트 게임을 한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일까?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보기에 치기어린 대학생의 소스 공개가 눈엣가시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넷가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2016년 리눅스는 세계 서버 시장에서 점유율 30% 수준, 국내에서는 66% 수준에 이르고 있다. 개인용 PC와 스마트 디바이스 부분에서도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HP 등과의 적극적인 참여로 리눅스의 확산은 더욱 거세어질 것으고 예상된다. 리눅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토발즈는 1991년 10월 미닉스 뉴스그룹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다. “사람들이 스스로 장치 드라이브를 만들던 미닉스 1.1의 그 아름다운 시절이 그리우십니까? 저는 지금 AT-386 컴퓨터에서 사용될 무료 버전의 미닉스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실제 사용이 가능한 단계에 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소스를 공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결정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며 자신에게 익숙한 프로그램 교환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당시에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쉐어웨어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개발자에게 자발적으로 몇달러씩 송금하는 관례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용자들에게 기부금 대신에 엽서를 보내 달라고 대답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은 이유에 대해 『리눅스, 그냥 재미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리눅스를 포스트할 당시 나는 다른 이들이 닦아놓은 터전을 바탕으로 그 위에 자신의 업적을 쌓았던 과학자 및 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걸었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과 나의 업적으로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나의 업적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의 피드백을 얻기를 바랐다. (…) 내가 공공연한 탐욕의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부러움의 시선이 아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핀란드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다르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철저히 학구적인 할아버지와 철저한 공산주의자인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르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linux-and-linux

토발즈는 쉐어웨어 프로그램을 다운받은 개발자에게 기부금 대신에 엽서를 보내 달라고 대답한다. 자신이 다른 이들이 닦아놓은 터전을 바탕으로 리눅스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른 개발자들에게 리눅스의 업적을 공유하여 리눅스를 함께 개선할 수 있기를 바랐다.

토발즈는 리눅스를 판매하여 그 대가를 통해 리눅스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또한 다른 어떤 사람이 리눅스를 판매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전세계 개발자들에게 소스코드를 공개하여 공동 작업을 통해 더욱 더 멋진 소프트웨어를 탄생시킬 것을 원하였다.

“누구든 자유럽게 이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이 운영체제를 다른 이에게 마음대로 판매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 운영체제를 이용하여 어떤 개선점이나 성과를 거둘 시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소스코드를 공개한다면 말입니다. 만약, 이 규칙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코드를 카피하거나, 코드를 이용하여 어떤 작업도 할 수 없습니다.”

리눅스 운영체제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혼자 끙끙대며 고치고 싶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했지 때문에 리눅스 소스를 공개하여 다른 개발자들을 개선 작업에 동참시켜 리눅스에 공유와 협업의 철학을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이 철학의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리눅스 운영체제의 소스 코드 혹은 기번 명령어는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제공된 정보를 향상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 그것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 향상된 정보 또한 무료로 배포되어야 한다.

토발즈 또한 누군가 리눅스를 훔쳐 마음대로 이용하는 일에 대한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해커 스타일의 리눅스 커뮤니티로부터 강한 반발을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확신처럼 훔쳐 사용하는 사례보다는 리눅스에 대한 개발자들, 즉 컴퓨터 전문가들인 해커들의 참여 열기는 곧바로 뜨거워졌다. 발표 직후부터 매일 세계 각 곳의 해커들의 여러가지 개선안들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이 개선안들을 기반들으로 공동 작업을 벌이면서 세계 최고의 운영체제가 만들어져갔다.

그는 리눅스에 대해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의 사상에 따른 카피레프트 원칙에 기반하는 GPL(General Public License)를 적용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새로운 혁신을 GPL 사상에 따라 전세계에 공개해야 한다는 리처드 스톨만의 주장과 토발즈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개발자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창시자이자 전설적인 해커이다. 소프트웨어의 개방과 공유에서 나아가 소프트트웨어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는 리눅스의 기반이 된 프로그램인 GNU 시스템의 개발자이다. 카피레프트(copyleft) 개념을 널리 퍼뜨린 활동가이다. 카피레프트란 독점적인 의미의 저작권인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저작권에 기반을 둔 사용 제한이 아니라 저작권을 기반으로 한 정보의 공유를 주장다. 지식과 정보는 소수에게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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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스톨만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창시자이자 전설적인 해커이다. 소프트웨어의 개방과 공유에서 나아가 소프트트웨어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는 리눅스의 기반이 된 프로그램인 GNU 시스템의 개발자이다. 카피레프트(copyleft) 개념을 널리 퍼뜨린 활동가이다.

토발즈, 리눅스 공유지 기반의 협업 모델을 탄생시키다

리눅스가 공개된지 1년 만인 1992년에 리눅스 뉴스그룹은 전세계 개발자들의 커뮤니티로 성장하여 자발적인 협업이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사십 없이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으며 자발적으로 버그(bug)를 수정했다. 오픈 소프트웨어 이론가인 에릭 레이먼드(Eric Steven Raymond)는 그의 저서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에서 “보는 눈만 많다면, 어떤 버그라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리누스의 법칙’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사람이 테스트하고 훑어보고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코드가 공개되어 있으면 버그는 빨리 잡힐 것이란 뜻이다.

공유지 기반의 협업 모델은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인간이나 몇몇 동물과 식물들은 왜 이타적 방식으로 협력하는가. 농촌의 지역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어떻게 자발적 연대를 형성하여 노동과 생활의 성과를 풍부하게 만드는가. 온라인에 연결된 전세계  사용자들이 적성해나가는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어떻게 그리고 왜 나날이 성장해 나가는가. 환경 감시, 범죄 예방, 도서관 운영, 부정부패 감시, 독재정치 저항 등. 열정과 용기가 가득한 사람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공유지 기반의 협업 모델은 우리가 속한 사회와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이자 모델이다.

GPL와 리눅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개발자 커뮤니티는 금전적 보상이 아니 정서적 보상과 평판을 보상을 동기 부여로 자발적 협업에 참여하고 있다. 토발즈의 표현처럼 “돈이 가장 큰 동기는 아니다.” “사람들이 열정에 가득할 때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단지 즐겁기 때문에 그 일을 할 때 말이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내실있는 기여를 했을 때 동료들로부터 얻게 되는 선망의 눈빛을 통해 서도 커다른 동기부여를 받는다.” “누구나 동료들을 놀라게 하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키고 싶어한다. 오픈소스 개발이라는 문화가 프로그래들에게 그것을 성취할 기회를 주었다.”

참고자료

Walter Isaacson, W. (2015). The Innovators: How a Group of Hackers, Geniuses, and Geeks Created the Digital Revolution,  Simon & Schuster.

Torvalds, L. (2002). Just for Fun: The Story of an Accidental Revolutionary, HarperBusiness.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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