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영원한 지도자, 리처드 스톨먼

소프트웨어 공유지를 위한 활동이 시작되다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 미국 UCSB 생물학과 교수인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1968년 12월 13일자 사이언스지에 실었던 논문 제목이다. 개릿 하딘은 마을 공유지에 목부들이 자신만을 위해 많은 소떼를 풀어 놓으면 공유지가 황폐화되는 비극적 원리를 설명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지하자원, 초원, 공기, 호수 같이 공동체의 모두가 사용해야 할 자원은 사적이익을 주장하는 시장 기능에 맡겨 두면 남용되어 자원이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다. “공유지”는 봉건 영주의 장원에 개간되지 않은 황무지를 소작인들의 방목이나 땔감 채취에 이용하던 데서 비롯되었다.

“하딘 선생님, 그건 아닌데요.”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공유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유의 딜레마와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는 성공한 공유지의 사례들을 연구했다. 지속 가능한 자발적, 자치적 공유자원 체계의 사례에 대한 분석으로서 자발적 집합 행동과 자치에 관한 제도론적 연구와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고지대는 구역별로 풀의 양에 따라 공유하는 제도를 주민 스스로 운영하는 스위스의 퇴르벨(Törbel),  일본의 고산 지대 목초지 및 산림 부락 공동 소유, 스페인 우에르타(Huerta) 관개 제도, 필리핀 잔제라(Zanjera) 관계 공동체 등 (Ostrom, 1990). 공유자원은 또한 이용과 지배, 지속 가능성과 관련하여 이용 경쟁, 무임승차, 남획, 상품화와 사유화, 비(非)지속가능성 문제들을 지닌다.

“정말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닐까?” 공유지의 문제를 해결해온 주체는 시장도 정부도 아닌 지역 공동체였다고 연구를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같은 지식 분야에서 공유 활동이 유독 활발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유익한 지식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여 사용하더라도 줄어들지 않고 발생하는 가치와 이익은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은 축적되는 성격을 지녀서 지식이 쌓이도 축적된 방대한 지식에 사람들이 접근이 허용되면 공공재, 즉 공유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잘 만들어진 유익한 소프트웨어는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용자 기반의 가치와 비즈니스가 더 증가하고 소프트웨어 소스가 공유되어 협업을 통해 개발됨으로써 많은 프로그래머의 지식이 축적되고 소프트웨어의 공유지로서 작동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소스를 공유적 자원으로 깨닫고 공공재로서의 소프트웨어를 위해 카피레프트(copyleft)를 주장하며 세계적 활동으로 조직하고 이끌어가기 시작한  첫번째 사람이 바로 리처드 스톨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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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게 개발되고 있는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들. 그렇다면 왜 소프트웨어 같은 지식 분야에서 공유 활동이 유독 활발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카피레프트 개념을 만든 리터드 스톨먼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은 구약 성서에서 나오는 광야에서 군중들에게 외치는 선지자 같아 보인다. 그에 대한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가장 열열한 활동가이자 프로그래머이다. 모든 사용자들에게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분석하며 수정하고 배포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이다. 이러한 자유를 얻은 소프트웨어가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이다. 스톨먼은  1983년에 유닉스 계열 컴퓨터 운영 체제이자 자유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GNU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이자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의 설립자이다. 그는 이 활동을 이끌면서 카피레프트(copyleft)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카피레프트. 얼핏보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것만 같은 개념으로 들린다.

카피레프트(copyleft)란 독점적인 의미의 저작권, 즉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카피레프트 활동가들은 저작권에 기반을 둔 사용 제한이 아니라 저작권을 기반으로 한 정보의 공유를 주장한다. 카피레프트 활동가들은 지식과 정보는 소수에게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피레프트는 정보를 사용할 권리를 2차 저작물의 저작자에게 전달하며, 이러한 권리의 전달을 막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공유 저작물과 벌이고 있는 독점 저작권의 전투를 풍자한 삽화

공유 저작물과 벌이고 있는 독점 저작권의 전투를 풍자한 삽화

수학과 컴퓨터를 좋아하던 괴짜 소년

스톨먼은 인쇄기 중개상을 하는 다니엘 스톨만(Daniel Stallman)과 학교 교사인 앨리스 리프만(Alice Lippman) 사이에 뉴욕에서 1953년에 태어나 맨해튼(Manhattan)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학에 큰 흥미를 보여 혼자서 미적분을 공부했다고 전한다.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아서 10살 이전부터 컴퓨터 여름 캠프에 참여하고 IBM 컴퓨터 매뉴얼을 읽었다고 한다.

“수학과 시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진리에 기초한 관계와 진리에 기초한 단계, 진리에 기토한 연역으로부터 나온다.” 나중에 수학과 시에 대해 스톨먼이 한 이야기이다. 그는 학교 친구들과의 경쟁을 너무 싫어하여 고등학교 선생님이 퀴즈 대회를 위해 두 팀으로 나누어 하던 퀴즈 대회에서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했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이 일에 대해 스톨먼은 이와 같이 설명했다.

“나는 경쟁이라는 개념에 반대했다. 그때 나는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은 교묘한 조정에 넘어가고 있었다. 같은 팀도 상대 팀도 다 같은 친구들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들은 서로를 이기려고 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우리 팀이 이여야 하지 질문에 답을 하라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상대팀보다 우리 팀을 선호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Isaacson, 2015)

괴짜 같기만 하던 스톨먼의 큰 즐거움은 콜롬비아 대학에서 마련한 고등학생을 위한 토요 프로그램(Columbia University Saturday program)에 참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1967년 부터 1969년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흥미로운 일은 스톨먼이 록펠러 대학교(Rockefeller University) 생물학부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록펠러 대학에서 그를 가르친 교수는 스톨먼이 생물학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그가 컴퓨터의 세계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등학생으로서 IBM 뉴욕 과학센터(IBM New York Scientific Center)에 포트란(Fortran) 프로그램 작성 작업에 고용되어 참여한 경험이었다. 그는 몇주만에 자신의 과제를 마무리하고  남은 여름 방학동안 IBM 시스템 프로그램밍 언어인 APL과 PL/I을 편집하면서 보낸다.  당시 경험에 대해 스톨만이 이렇게 회고한다.

“포트란 언어는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에 비해 너무 형편 없어서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하버드대에 들어간 해커

하버드대에 진학한 스톨먼은 수학 천재들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방학에는 MIT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일했고 졸업 후에도 연구실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이 연구실에서의 생황에서부터 프로그램 개발의 협업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전부터 존재해온 소프트웨어 공유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다른 대학이나 기업에서 특정 프로그램을 이식하거나 사용하고 싶다고 하면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했다. 소스 코드 역시 언제나 공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70년대 MIT 연구원 시절의 춤추는 리처드 스톨만

1970년대 MIT 연구원 시절의 춤추는 리처드 스톨먼

스톨먼은 규제와 잠긴 문에 대해 저항했다. 친구들과 함께 접근이 금지된 단말기에 침입할 방도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MIT에서 사용자 데이터베이스와 강력한 암호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이 조치에 저항하고 동료들에게도 함께 저항할 것을 촉구하곤 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MIT에서는 해커들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프로그래머들은 영리 목적의 소프트웨어 회사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뿐만 아니라 MIT 연구실에서도 독점적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설치한 컴퓨터들을 사들여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연구원들은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기말 유지 협약서에 서명을 하고 일하는 처지가 되었다.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공유하지 않으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본격화한 것이다.

1980년대는 경제불황으로 인기가 추락했던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지미 카터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제4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시작된다.  보수적이고 강경한 국내외정책을 펼쳐 1984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월터 먼데일에게 압승을 거두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조세감면과 사회복지지출을 억제한 그의 경제정책을 레이거노믹스라고 부른다.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마거릿 대처와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이 영미권에 등장했고, 이에 따라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권이 막을 열었다. 스톨먼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애플사 같은 기업들이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에 기반하여 독점점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사용자들에게조차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하지 못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소프트웨어 저작권이라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소프트웨어의 독점에 대해 타협하지 않게 되었던 중요한 계기는 제록스에서 기증한 프린터에 관한 경험이었다. 그는 인쇄 종이가 프린터에 끼어 중단되는 것을 사용자에게 알리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도 제록스 프린터 담당자에게 소스 코드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담당자는 기밀 유지 협약에 서명했다고 거절했다. 스톨먼은 도의적으로 참을 수 없다고 격분한다. 그는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공유하지 않겠다는 사실에 동의함으로써 사회를 추하게 만들기 때문이 이는 악(惡)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악의 세력에 저항하고 물리치기 위한 방법으로 자유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2014년 63세의 리처드 스톨만.

2014년 63세의 리처드 스톨먼

유닉스(Unix)
유닉스는 대부분의 현대적 컴퓨터 운영 체제의 원형이 된 컴퓨터 운영체제이다. 리눅스, 안드로이드, macOS, iOS 등 윈도우즈 계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현대적 운영 체제는 유닉스에 그 뿌리로 두고 있다. 원래 멀티유저용 서버 운영체제이나 현재는 개인용 데스크탑이나 임베디드용으로도 쓰인다. 1960년대 후반 MIT 대학과 벨연구소에서 개발을 시도했던 시분할 운영 체제 멀틱스(Multics)가 유닉스의 기원이다. 멀틱스는 여러 사용자를 동시에 지원하고 기능이 많은 우수한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많은 실험적 첨단 기능을 가지다 보니 대단히 크고 복잡한 운영체제였고 무엇보다  비싼 대형 컴퓨터에만 돌아갔다.

그래서 AT&T의 벨 연구소의 켄 톰슨(Kenneth Lane Thompson)과 데니스 리치(Dennis MacAlistair Ritchie) 두 사람은 70년대 초부터 멀틱스의 편리한 기능를 계승하면서도 연구실 수준에서 살 수있는 DEC PDP 계열의 미니컴퓨터에서도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단순화시킨 운영체제로서 유닉스를 개발하게 된다. 이 두사람은 1983년에 유닉스 개발과 관련된 공로로 함께 튜링상(Turing Award)을 수상했다. 멀틱스의 복잡함을 단순화시켰다는 의미로 유닉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러 사용자를 동시에 지원하고 기능이 많은 우수한 운영체제라는 특성 덕분에 다중 사용자 방식의 시분할 운영 체제가 필요한 교육 및 연구 기관에서 즐겨 사용된다.

GNU 프로젝트의 닻을 올리다

‘그누’라고 발음되는 GNU는 GNU 프로젝트를 통하여 개발한 유닉스 계열 컴퓨터 운영 체제이다.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유닉스 호환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되는 것이 목표로 하고 있다. 리처드 스톨먼은 1983년에 GNU 개발을 처음 시작하였다. 원래는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의 중심이었지만 2010년 11월까지 GNU 안정판이 나오지는 않았다. GNU는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란 의미를 갖는 영어 문장 “GNU’s Not UNIX”의 약자로, 독점 소프트웨어 운영 체제인 유닉스를 비꼰 개념이다.

스톨만은 GNU를 “그누”로 읽자고 제안한다. 유닉스의 아키텍처는 기술적으로 믿을만 한 것으로 증명되어 있어, GNU 시스템은 유닉스와 호환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유닉스 아키텍처는 개별적인 요소들이 따로 따로 작성되는 것을 허용한다. 또, 이미 공개되어 있던 조판 소프트웨어 TeX나 X 윈도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GNU가 제공하는 허가서로는 GNU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 (GPL), GNU 약소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 (LGPL), GNU 자유 문서 사용 허가서 (GFDL)가 있다.  GNU 선언문은 새로운 자유 소프트웨어 GNU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GNU(그뉴)란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인 Gnu is Not Unix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첫자를 따서 만든 약어이다. GNU는 유닉스와 완벽하게 호환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이름이며, 원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 몇몇 자원자들이 내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보다 많은 자원자들의 지원과 프로그램과 장비 그리고 금전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황금률이라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사용자를 각각 구분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사용자 서로가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사용자 간의 결속이 깨지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올바른 양심으로 비공개 협정이나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에 서명할 수 없다. 여러 해 동안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경향과 다른 박정한 일들에 저항해 보았지만 결국 그들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내 의지에 역행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연구소에 나는 더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 일단 GNU가 만들어지면, 모든 사람들은 훌륭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공기처럼 무료로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Stallman, 1985)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도 컴퓨터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 나는 사용이 제한되는 소프트웨어 없이도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자유 소프트웨어의 본체를 만들 결심을 했다. 나는 MIT측이 어떠한 법률적 근거에 의해서도 GNU의 자유로운 배포를 제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사용자를 각각 구분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사용자 서로가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사용자 간의 결속이 깨지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올바른 양심으로 비공개 협정이나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에 서명할 수 없다. 여러 해 동안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경향과 다른 박정한 일들에 저항해 보았지만 결국 그들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내 의지에 역행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연구소에 나는 더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GNU Manif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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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U의 로고. GNU 선언문에서는 GNU가 만들어지면, 모든 사람들은 훌륭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공기처럼 무료로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소프트웨어의 공유와 협업을 위하여

스톨먼은 1980년대에 소프트웨어의 본래 생산 유통 방식인 정보 공유의 방식을 복원하고자 한 운동으로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Free Software Movement)을 본격화한다. 이 활동의 핵심 작업은 운영 체제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더 완성도 높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목표는 운영 체제만이 아닌 모든 소프트웨어를 자유소프트웨어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운동의 목표를 모든 소프트웨어가 무료로 배포되어야 한다는 데 중심을 두지 않고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일체의 규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데 두었다. 여기에서 자유의 의미는 사용자의 본질적인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GNU 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많은 프로그래머들은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상용화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프로그래머들이 서로를 동지로 느끼기보다 투쟁해야 할 대상으로 느끼게 된다.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우정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은 프로그램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전형적인 마케팅 협정은 프로그래머들이 다른 프로그래머를 친구로 대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자는 우정과 준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우정을 보다 중요시한다. 그러나 법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냉소적이 되어 프로그래밍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GNU Manifesto)

GNU 프로젝트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 대해 사용자가 자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하며 자유 소프트웨를 사용하면, 사용자 스스로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환경을 구성할 수 있으며 독점 자유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의존해야 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스톨먼에게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은 소프트웨어를 협업적인 방식으로 공동으로 개발하는 것을 넘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덕적 활동이었다. 공유와 협동이라는 사회적 결속을 증시키이 때문에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이 사회 전체를 위한 본질적 가치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자유 소프트웨어의 4가지 요건에 대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GNU Operating System).

첫번째 자유 : 프로그램을 원하 어떠한 목적으로도 실행할 수 있는 자유
두번째 자유 : 프로그램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학습하고, 자신의 필요에 맞게 개작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을 위해서는 소스 코드에 대한 접근이 전제되어야 한다.
세번째 자유 :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복제물을 재배포할 수 있는 자유.
네번째 자유 : 프로그램을 개선시킬 수 있는 자유와 개선된 이점을 공동체 전체가 누릴 수 있게 그것을 발표할 자유. 이를 위해서는 역시 소스 코드에 대한 접근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톨먼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 대해 정식화하고 인증하기 위해  GNU 일반 공중 사용허가서(GNU gerneral public licence)와 카피레프트 개념을 제시한다. 일반 공중 사용허가서는 모든 사람에게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복사하고, 수정하고, 수정된 버전을 배포할 수 있는 권리는 부여하되, 자신만의 규제를 더할 수 있는 권리는 부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스톨먼은 GNU 운영체제를 위한 텍스트 편집기와 컴파일러를 직접 작성했다. 하지만 운영체제의 중심 모듈로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요청을 처리하고 요청을 컴퓨터 CPU가 이해할 수 있는 명령으로 변환하는 역할을 하는 커널을 완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스톨먼은 스웨덴 헬싱키 대학에 재직중이던 스물한살의 청년 리누스 토발즈의 도움을 받는다. 토발즈는 자신이 개발한 리눅스 커널에 대해 GNU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를 사용하기로 한다. 토발즈는 전세계 해커들에게 소스 코드를 공개하고 공동의 작업을 통해 리눅스가 멋진 프로그램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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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U 웹사이트.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취지와 목표, 그리고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토발즈와 스톨먼의 운명적 만남

개인들간에 공유하고 공유된 자원을 기반으로 협업하는 방식은 최근에 들어 만들어진 새로운 문화가 아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들에서도 이타적인 방식의 협업은 진화 생물학 분야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공유지 기반의 협업은 전혀 새로운 모델은 아니며, 많은 사회에서 자발적인 커뮤니티들이 지역, 경제, 취미, 종교 등 다양한 목적으로 협업을 진행해 왔다.

특히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큰 성과를 내기 힘들며 공유를 하여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더라도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고 더 커지는 분야들이 있다. 바로 지식 분야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한사람의 역량으로 큰 성과를 내기 힘든 분야이며 소스를 작성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끝없이 반복하는 작업 자체에 지식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토발즈의 리눅스 커널 공개는 전세계적으로 자발적인 개인들간의 협업을 불러일으켰다. 리눅스가 공개된 지 1년 만인 1992년 가을에 인터넷상에 리눅스 뉴스그룹은 많은 사용자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티로 성장했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이론가인 에릭 레이먼드(Eric Steven Raymond)는 그의 저서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에서 제시했던 “눈알이 많아질수록 버그를 잡기 쉬워진다”는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
에릭 레이먼드는 그의 저서 『성당과 시장』에서 자유 소프트웨어 철학을 주장하는 유명한 내용을 서술한다. 레이먼드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페치메일(fetchmail)의 사례를 분석하여 자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유효성에 대한 글을 1997년 5월 27일 리눅스 회의에서 처음 공개한다.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사업용 소프트웨어의 성장 모델과 리눅스 세계의 시장 모델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성당 모델은 제한된 개발자들에게만 소스 코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개발하는 모델이다. 반면에 시장 모델은 소스 코드가 인터넷으로 일반에 공개된 상태로 개발된다. 레이몬드는 리눅스 커널 프로젝트의 리더인 리누스 투르발스가 이 방식을 발명해 냈다고 쓰고 있다.

레이먼드는  “눈알이 많아질수록 버그를 잡기 쉬워진다”는 명제를 리누스 법칙이라고 이름붙인다. 이 말은 많은 사람이 테스트하고 훑어보고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코드가 공개되어 있으면 버그는 빨리 잡힐 것이란 뜻이다. 이에 대해 성당 모델에서는 소스 코드를 여러 명의 개발자들만 볼 수 있으므로 버그를 잡는데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고 주장했다.

인류학자이며 오픈 소스 개발 과정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반복되는지 설명한 그의 초기 문서인 성당과 시장의 저자로 잘 알려진 오픈 소스 운동의 대표 인물이다.

에릭레이먼드는 인류학자이며 오픈 소스 개발 과정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반복되는지 설명한 그의 초기 문서인 성당과 시장의 저자로 잘 알려진 오픈 소스 운동의 대표 인물이다.

GNU와 리눅스를 중심으로 협업하는 프로그래머들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감정적 보상을 통해 자발적으로 협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토발즈는 당시의 자발적, 집합적 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돈이 가장 큰 동기는 아니다. 사람들은 열정으로 가득찰 때 최고의 결과를 내곤 한다. 단지 즐겁기 때문에 그 일을 할 때 말이다. 극작가와 조각가와 기업가가 그런 것처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해커들은 내실있는기여를 했을 때 동료들로부터 받게 되는 선망의 눈빛을 통해서도 커다란 동기부여를 받는다. (…) 누구나 동료들을 놀라게 하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키고 싶어한다. 오픈 소소 개발이라는 문화가 프로그래머들에게 그것을 성취할 기회를 주었다.”(Tolvalds, 2002)

GNU와 리눅스, 즉 스톨먼과 토발즈의 만남은 공유지 기반의 집합적 협업 모델의 성공을 의미한다. 하지만 둘의 차이도 분명했다.  토발즈가 배포한 커널에는 독점적인 기능을 포함한 일부의 바이너리 영역이 있었다. 스톨먼은 시스템 전체를 의미할 때는 리눅스가 아니라 GNU/리눅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스토먼은 순수주의자이고 토발즈는 실용주의자였다. 토발즈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open source software, OS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효율적 방식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강조한데 비해 스톨먼은 소프트웨어는 만드는 방식뿐만 아니라 만드는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토발즈는 스톨먼을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이끌어왔다. 나는 언제나 이상주의적 사람들은 흥미롭긴 하지만 재미었고 무섭다고 생각했다.”(Tolvalds, 2002) 토발즈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 돈을 버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GNU와 리눅스의 결합은 수만 명의 협업자들이 참여하여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협업 모델을 만들었으며 독접적이지 않으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공유지 기반의 동료 생산(commons-based peer production) 모델이 본격화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90년대 들어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통합된 애플 그리고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통합하지 않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두개의 흐름과 더블어 누구나 수정할 수 있으며 소프트웨어 소스가 완전히 개방된 오픈 소스 기반의 무료 소프트웨어라는 또 하나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 20년 후. 2010년대 iOS라는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맥(Mac)과 아이폰(iPhone), 아이패(iPad)의 애플 그리고 윈도우와 오피스의 마이크로소프트, 안드로이드 기반의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라는 또다른 세 개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 자료

Isaacson, W. (2015). The Innovators: How a Group of Hackers, Geniuses, and Geeks Created the Digital Revolution, Simon & Schuster; Reprint edition.

Stallman, R. (1985). GNU Manifesto, https://en.wikipedia.org/wiki/GNU_Manif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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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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