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의 붉은 장미, 콜론타이

러시아 혁명의 붉은 장미.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Aleksandra Mikhailovna Kollontai) 그녀를 한마디로 그렇게 표현하지요. 3월 8일, 어제는 세계여성의날이었습니다. 3월 9일, 오늘은 콜론타이가 스탈린 지배하의 소련에서 1952년 모스크바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저는 1984년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 때 이 분의 소설 <붉은 사랑>을 읽은 깊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녀는 1896년 나르바로 떠난 여행에서 콜론타이는 1만 2천 명이 일하는 거대한 직물공장을 견학하게 되고 그 곳의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와 그들의 아이들을 목격합니다. 또한 1896년 러시아 크론호름 직물공장의 노동자 숙소를 둘러보던 중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당시의 심경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성과 그들의 운명은 내가 살고 있는 동안 나를 사로잡았고, 그들의 운명에 대한 걱정은 나를 사회주의로 이끌었다.”

그후 그녀는 러시아사회민주당과 러시아공산당에 참여하면서 러시아 혁명을 이끕니다.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조차도 여성은 가사를 돌보아야 하는 존재일 것을 주장하던 시대에 그녀는 노동하는 여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단체를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했고, 여성들이 공장 등으로도 적극 진출하여 여성 노동계층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성노동자 운동은 노동자 운동 전체에서 따로 뗄 수 없는 일부이다. 여성 노동자는 모든 반란에서 남성 노동자와 함께 일어났다. 그럼에도 남성 노동자들 만큼의 권리를 찾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 소심하며 짓밟힌 채 무권리 상태에 처해 있던 여성은 파업과 격동의 시기에 빠르게 성장해 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녀는 레닌과 함께 볼세비키와 러시아 혁명을 이끌며 가사노동해방론, 무상교육론, 미혼모보호론, 이혼의 자유 보장, 자유연애운동 등을 주장하고 실현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주장을 지지하고 지원한 것은 레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로 그녀는 노동자가 볼세비키 당과 정치에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과 활동을 벌임에 따라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집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10년. 러시아 혁명의 붉은 장미로 불리우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독일의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제안되어 만들어진 날입니다.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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