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자신의 지식을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살아가는 지식인은 몇가지 형태의 모습을 보인다. 체제를 지키기는 데 봉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 위한 모험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또는 자신의 이해 관계를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고 뭐고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면서 소시민으로 전락하거나 세상에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하게 변하는 지식인들도 있다. 갑자기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어떤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1939)을 썼을까 궁금해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 진실을 아는 자의 갈등과 선택>에서 브레히트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지식인인 갈릴레이가 교황과 권력자들에게 얼마나 비굴하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지 그리고 결국에는 외국에서 자신의 책을 출판하려는 의지를 보이는지를 다루고 있다.

브레히트는 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태어났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1928년 자본가의 탐욕을 드러내는 <서푼짜리 오페라>를 통해 1928년 그는 극작가로서 성공했다. 무정부주의자였으나 전쟁을 겪고 마르크스주의가 되어 나치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나치 집권과 좌파 탄압을 위해 날조한 사건인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덴마크로 망명하여 저장운동을 계속하다가 1940년 핀란드로 옮겼다가 1년 뒤 미국에 망명한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독으로 이주한다. 1953년 노동자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한 동독 정부에 대해 인민을 버렸다고 비판했다. 1956년 8월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와 <서정시가 어울리지 않는 시대>는 덴마크로 피신하여 저항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1939년에 창작되었을 것이다. 그는 살아남은 것이 오직 운이 좋았음이고 먼저 떠난 친구들이 자신에게 남긴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은 돌아가신 김남주 시인이 번역한 그의 시와 부인 헬레나 바이겔과 1953년 노동절 시위에 참여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서정시가 어울리지 않는 시대

물론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산다 그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고 그의 얼굴은 깨끗하다

정원의 나무가 기형적인 것은

토양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를 비난한다 불구자라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푸른 조각배나 해협의 한가로운 돛을

나는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어부들의 닳아질 대로 닳아진 어망뿐이다

왜 나는 사십대에 허리가 구부러진

토지 없는 농부에 대해서만 노래하는가

처녀들의 유방은 옛날처럼 따뜻한데

나의 시에 운율을 맞추면 나에게는 그것이

겉멋을 부리는 것처럼 생각되기까지 한다

나의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꽃으로 만발한 사과나무에 대한 도취와

저 칠쟁이의 연설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나 후자만이 나로 하여금

당장에 펜을 잡게 한다.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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