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의 필경과 책 제작 과정

14세기 스페인의 스크이로리움을 묘사한 그림

14세기 스페인의 스크이로리움을 묘사한 그림

로마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 전쟁의 신 마르스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난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 형제에 의해 테베레 강가에 건국됩니다. 서쪽으로는 스페인과 영국 동으로는 라인강과 다뉴브강 남으로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까지 지배하던 로마는 기원후 476년에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됩니다. 서로마 제국의 몰락에서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1,000년의 시기를 중세라고 부릅니다. 로마인들은 중세 유럽에 자신들의 문명과 함께 라틴어를 물려 주었지요. 라틴어는 지명 “라티움(Latium)”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발상지는 로마입니다. 중세에 들어서자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던 유럽인은 극소수였고 그들 대부분 라틴어를 사용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을 세운 유럽의 강력한 군주이던 샤를마뉴(Charlemagne)조차도 문맹이었다고 하니 라틴어를 쓰거나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중세 유럽을 하나의 거대한 그리스도교 왕국으로 보기고 합니다. 그리스도교 왕국이라는 관점에서는 성직자단과 세속통치권자들이라는 2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집단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 두 집단은 서로 보완하며 경쟁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투쟁하는 관계로서 인간의 정신적 요구와 세속적 요구를 충족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 멸망 이후에 사라져버린 지식과 문화를 되살리는 일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성직자들과 수도원뿐이었습니다.

필사본 제작 과정

수도원 필경실인 스크리토리움(scriptorium)에서는 스크리토리(scritori)가 책의 내용과 전체 레이아웃 스케치를 구성하고 그 설계에 따라 필경 수도사들이 정서한 필체로 필사를 합니다. 필경 수도사들은 글을 베끼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서예와 색채와 그림에서 창조적 능력을 발휘합니다. 필사한 페이지는 장식적인 두문자를 그리는 채식가(彩飾家)와 그림으로 담당하는 삽화가들의 손을 거쳐 왔성했습니다. 채식하는 방식으로 쓰는 문자들도 있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글과 그림을 연필로 먼저 그리고 잉크를 사용하여 선화작업을 한 후에 금박과 색채를 입혔다고 합니다. 채식가는 장식 문양에 금이나 은의 박막(薄膜)을 붙이거나 금분을 칠했습니다. 예술 작품의 수준이지요.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개발하면서 이 필사본 책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작업이었고 책 한권을 위한 양피지를 위해 수백마리의 양이 필요했다고 하니 책 가격이 매우 비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교회와 귀족들이 아니라면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보석이나 세공이 겉들여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과 재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브리티쉬 라이브러이(British Library) 보관되어 있는 1480년 시기 책에 보여지는 스크리토리움 풍경과 블랙 레터 글꼴. 출처 위키피디아

브리티쉬 라이브러이(British Library) 보관되어 있는 1480년 시기 책에 보여지는 스크리토리움 풍경과 블랙 레터 글꼴.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13세기에서부터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개발되기 전인 이 시기에 필경사들의 고된 작업들에서 블랙 레터(Black Letter) 같은 글꼴이란 것이 탄생하며 삽화와 텍스트가 결합되고 표지를 만들어 양피지들을 묶어 만드는 책의 원형들이 준비되었습니다. 중세 필경사들에 의해 개발된 블랙 레터 글꼴은 서부 유럽에서 12세기~16세기에 걸쳐 주로 사용되던 글꼴이다. 독일어에서의 경우는 20세기까지도 사용됩니다. 동전 조각가이자 구텐베르크의 제자였던 프랑스인 니콜라스 젠슨(Nicolas Jenson)이 1470년 베네치아에 인쇄소를 설립하여 읽기 쉬운 글꼴로서 “로마체”를 개발하면서 인쇄 글꼴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그 원형은 중세 필경 수도사들의 오랜 세월을 필사 작업에 기반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 레터 글꼴입니다.

종이 코덱스와 필경 작업

15세기 무렵에 제작된 많은 필사본 책들은 색상이나 형태에 있어서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필경 수도사들의 작업은 예술 작품이 되었습니다. 전해지는 일부의 책들에는 필경 수도사의 이름이 남겨 있다고 하니 그들의 자부심도 대단하였을 것입니다. 이 글꼴들은 후에 인쇄용 활자체의 모델이 되었으며, 중세시대의 필사본 책은 초기 인쇄 책자 출판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어를 사용한 비잔틴 제국의 수도원을 제외하고는 서부 유럽의 모든 수도원에서 라틴어로 책을 썼습니다. 14세기 인문주의 학파가 등장하고, 같은 시기에 지역 고유의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부상하면서 그리스어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 언어들이 서부 유럽의 수도원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필경실은 수도원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크게 번성하여 대부분의 수도원들은 필사실을 갖추었다고 하며 수도사들 이외에도 필경과 책 제작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프랑스 국와 샤를 5세의  동생이던 베리(Jean, Due de Berry) 공은 네덜란드 필사 전문가인 림부르크(Limbourg) 형제를 자신의 영지로 초빙하여 사설 도서관의 책을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베리 공작의 아주 풍요로운 시간들

림부르크(Limbourg) 형제의 『베리 공작의 아주 풍요로운 시간들』(les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은 베리 공작의 풍요로운 절기 행사를 사실화 형식으로 자세히 묘사한 삽화가 그려져 있는 달력으로서 채식 필사본 시대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줍니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발달한 코덱스 출판 방식의 확산은 봉건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고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세력이 정치 권력에 영향을 끼치고 중세 후반에 국왕이 강화되고 도시에 대학들이 형성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림부르크 형제의 작품들은 책이 중세 초기의 종교적인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과 함께 15C 중세 탐미주의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가 남겨 전해지고 있는 작품들은 당시 필경과 채색 작업의 수준이 얼마나 예술적 수준이 높은 걸작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달력 형식을 취한 그림이 있는 페이지. 새해의 잔치와 선물 교환을 묘사하고 있다.

달력 형식을 취한 그림이 있는 페이지. 새해의 잔치와 선물 교환을 묘사하고 있다.

성 어거스틴의 세례(The Baptism of Saint Augustine)

성 어거스틴의 세례(The Baptism of Saint Augustine)

재판정에 들어서는 예수(Christ Led to Judgment)

재판정에 들어서는 예수(Christ Led to Judgment)

림부르크 형제는 삼형제였다고 합니다. 헤르만(Hermann), 폴(Pol), 얀(Jan)인데 조각가였던 아놀드 반 림부르크(Arnold van Limburg)의 아들로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부르고뉴 공국(Principality of Burgundy)의 궁정 화가이던 말루엘(Jean Malouel)의 조카이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죽은 후 이 삼촌 밑에서 자랐다고 전해집니다. 말루엘이 죽은 후 베리 공작을 위해 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형제들은 1416년에 전염병으로 모두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미술사에서는 플랑드르 미술 (Flemish art)에 속하며 림부르크 형제들의 활동을 통해 당시 화가들이 채식 필사본 코덱스 제작자들이기도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채식 필사본의 시대는 르네상스와 함께 폭발한 종이와 인쇄 기술의 혁신과 지식의 혁명에 의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열리면서 사라져 갑니다.

플랑드르 미술은 문양직(文樣織)의 밑그림, 성서의 삽화, 제단화 등에 자연주의풍을 전개하였습니다. 프랑드르 미술의 화가들은 파리와 디종에서 활약하였고 고딕의 전통에서 나왔으면서도 생활과 풍토와 밀착된 소박하나 정밀한 관찰에 입각, 새로운 사실주의를 지향하여 그 후에 나타나는 플랑드르 미술의 참신함의 원천이 되었다고 평해지고 있습니다.

켈스의 비밀(The Secret of Kells)

중세의 필경과 책 제작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애니메이션 하나를 소개해드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켈스의 비밀(The Secret of Kells)>입니다. 스물일곱살의 청년은 어둠의 세계를 빛의 세계로 바꾸어주는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책을 만들고 쓰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실험하고 탐험하고. 때로는 길을 잘못 들어 어둠의 심연에서 헤매기도 하며 이십사년을 보냅니다. 한장면 한장면이 예술 작품 같아서 눈을 뗄 수 없으면서도, 이 애니메이션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용감하게 세상을 해쳐나가던 내 지난 시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톰 무어(Tomm Moore), 노라 트메이(Nora Twomey) 감독, 프랑스와 벨기에와 아일랜드가 공동 제작한 애니메이션입니다. 12살 소년 수도사 브랜든이 전설의 책을 만들기 위해 고난 속의 탐험을 하는 내용이지요. 작품성과 재미에서 지금까지 본 최고의 애니메이션들 중 하나가 될 듯합니다. 유럽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느낄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 https://medievalfragments.wordpress.com/2013/11/05/where-are-the-scriptoria/
  • http://en.wikipedia.org/wiki/Scriptorium
  • http://en.wikipedia.org/wiki/Tr%C3%A8s_Riches_Heures_du_Duc_de_Berry
  • http://en.wikipedia.org/wiki/Tr%C3%A8s_Riches_Heures_du_Duc_de_Berry
  • http://en.wikipedia.org/wiki/Tr%C3%A8s_Riches_Heures_du_Duc_de_Berry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