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인쇄 시대를 만든 판화 기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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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진 인쇄 기술은 2천년에 가까운 판화와 인쇄 관련 기술이 수많은 기술자와 발명가들의 노력이 축적되면서 개발된 것입니다. 중국과 조선의 고대 국가 시절에 사용되던 목판 인쇄와 목판화가 중세의 서양에 전해지면서 구텐베르크 인쇄 기술과 결합됩니다. 그림을 효율적이고 실재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동판화(銅版畫)로 이어진 후 동판화 기술은 실물과 풍경을 실제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묘사하는 수준을 거쳐 사진제판 기술의 발명으로 이어집니다. 이 글은 매우 길고 오래된 그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습니다.

중세 인쇄의 놀라운 성과, 판화(printmaking, 版畵)

판화는 목판·동판·석판 등에 형상을 새긴 뒤 그 위에 잉크를 입혀 종이·천·양피지·플라스틱 등에 찍어낸 것입니다. 나무를 판으로 이용하여 이미지를 새겨 파내지 않은 부분이 인쇄되는 볼록판 인쇄(凸版印刷) 방식입니다. 판화는 중국, 조선, 일본의 책들에서 매우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방식으로서 책이나 회화 작품의 보급을 위한 복제 수단이었습니다.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도 볼록판 인쇄를 위해 나무를 판으로 한자를 새겨 만든 것이었습니다.

팔만대장경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16년에 걸쳐 완성한 판화 원리의 인쇄판으로서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유럽에는 1,400년대에 목판화가 전해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중세와 근세에 책과 인쇄물에 그림이나 광고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판화 기법 덕분이었습니다. 유럽에서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목판화로는 1423년에 제작된 <성 크리스토프>(St. Christoph)로서 독일의 카르투시오(Carthusio) 수도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독일 쾰른의 성 브루노(San Bruno, 1030∼1101)가 “하느님과의 합일”을 지향하며 1084년 연중내내 눈 덮인 프랑스 알프스산 중턱에 프랑스 알프스 지대의 샤르트뢰즈(Chartreuse)에 설립했습니다. 외부 방문객은 일절 받지 않으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4시간의 산책 중에만 대화가 허락되는, 가톨릭 수도회 중 가장 엄격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도사들은 청빈·정결·순종·침묵을 서원하며 동료와 함께 노동과 관상기도의 생활을 하면서 엄격한 고독과 철저한 가난한 생활을 합니다.

중세시대에 이 수도회 수도사들은 성서를 써서 제작하는 일을 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화인 <성 크리스토프>(St. Christoph)가 카르투시오 수도원 남아 있는 것은 성경 필경 작업과 관련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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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의하면, 크리스토프는 사람들을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너다 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거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더 힘센 사람이 나타나면 주인으로 알고 섬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왕을, 다음에는 마귀를 찾아갔으나 모두 실망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마귀는 예수를 겁내기 때문에 예수가 최고 힘센 장사일 거라고만 추측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손님들 가운데 작은 어린이가 있었는데, 그가 강을 건너려고 물 속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서, 크리스토퍼는 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도 없던 일이라 그는 “이상한 일인데” 하고  중얼거리는데, 그 어린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지금 전 세계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네가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소아시아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지는데, 크리스토포로스(Christophoros)는 원래 희랍어로서,”그리스도를 어깨에 메고 간다”는 뜻입니다. 450년경에 칼체돈에서는 성 크리스토퍼를 기념하는 성당을 세워졌고 순례자와 여행자의 수호 성인으로 존경받게 됩니다.

판화와 사진의 가교 역할을 한 동판화

목판 인쇄법은 인쇄술이 발명된 초기 이래로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까지도 줄곧 행해졌으나 곧 구리나 백랍 등을 비롯한 기타 여러 금속판을 인쇄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판을 직접 파내는 목판과는 달리 금속판을 사용할 때는 밀랍이나 역청을 입힌 판의 표면에 도안을 그리고 상을 제외한 여백 부분을 남기고 파낸 후 표면을 산으로 부식시켜 볼록판을 만드는 방법이 이용되었습니다.

동판화(铜版画)는 1430년대 독일에서 금속세공사들의 기법을 차용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판화는 버린(burin)이라는 조각도구를 이용해 동판에 얇은 선을 새긴 후 인쇄하며 각기 다른 선의 효과를 위해 룰렛(roulette. 뾰족한 바늘로 덮인 작은 바퀴)이나 버니셔(burnisher. 타원형 단면의 강철 막대기로서 금속판의 선을 작게 한다든지 깎은 자리에 기름을 발라 연마해서 매끈하게 하는 도구)라 불리는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버린 등을 이용하여 새겨진 동판에 골고루 잉크를 입힌 후 와이퍼를 이용해 닦아내면 새겨진 선에만 잉크가 남는다. 종이를 덮고 프래스를 이용하여 인쇄한다. 이와 같이 새겨진 홈에 있는 잉크를 이용하여 인쇄하는 기법을 오목판 인쇄(凹版印刷)라고 합니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몇백 장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동판화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영상입니다.

동판화는 에칭(etching) 방법으로 대체됩니다. 이 방법은 다니엘 호퍼(Daniel Hopfer, circa 1470–1536)가 개발하였는데 동판 등의 금속판에 밑그림을 그려 산(酸)으로 부식시켜 판화를 만듭니다. 동판 면에 항산성 물질인 그라운드를 입히고 그 위에 뾰족한 도구로 밑그림을 그립니다. 그라운드는 대개 밀납·역청·송진의 혼합물입니다. 밑그림을 새긴 동판을 질산 등 부식액에 넣으면 그라운드가 벗겨진 그림 부분이 부식되면서 동판에 홈이 패여 선 형태가 새겨집니다. 판 위의 그라운드를 닦아낸 뒤 잉크를 발라 습기를 가한 종이에 압착시키면 그림이 종이에 옮겨지면서 판화가 완성됩니다. 에칭 판화기법은 갑옷 장식무늬를 에칭으로 새기던 관례에서 유래한 것으로 19세기에 사진 제판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 신문과 예술 분야에서 자주 사용된다. 직접 구리판에 선을 조각하는 직접법보다 선을 뜻대로 그리기 쉽다. 아주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폐의 제작에 사용됩니다.

다니엘 호퍼(Daniel Hopfer)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으로 전해지는 <군인과 그의 아내>(The Soldier and his Wife) 15세기 후반 독일의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뛰어난 동판화이다. 독일은 신성로마제국(962–1806)으로 묶여 있었지만  중앙집권적이던 초기와 달리 15세기만 하더라도 사실상 여러 제후들이 분할하여 통치하던 지역이다. 이런 와중에 1486년에는 헝거리와 전쟁이 있었고 1517년에는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 개혁 폭풍이 일어나는 진원지이기도 하다. 부부는 어딘가 먼길을 떠나는 듯하다. 부임지가 바뀌는 것인지 전란을 피해 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군인이 아내를 보는 눈빛은 미안감과 엄격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반면에 아내는 냄비와 국자와 수저를 눈에 짊어지고 따르는데 남편을 쳐다보는 눈빛이 따듯하다.

동판화는 에칭(etching) 방법으로 대체된다. 이 방법은 다니엘 호퍼(Daniel Hopfer)가 개발하였는데 동판 등의 금속판에 밑그림을 그려 산(酸)으로 부식시켜 만든다.

동판화는 에칭(etching) 방법으로 대체된다. 이 방법은 다니엘 호퍼(Daniel Hopfer)가 개발하였는데 동판 등의 금속판에 밑그림을 그려 산(酸)으로 부식시켜 만든다.

먼곤 폰턴의 사진 제판 기술의 개발

감광물질을 인쇄판 제작에 응용하는 실험은 1813년경 프랑스 발명가이자 사진술 연구자인 조제프 니세포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가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진을 처음 찍은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1826년 니엡스는 최초로 영구적 사진술을 개발했습니다. 백랍판이나 동판에 감광성 토역청을 바른 후 햇빛이 양각의 밑그림본을 통과하여 판을 비추도록 하면 햇빛이 밑그림을 통과할 때 비도안 부분은 햇빛에 노출되어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때 밑그림으로 인해 햇빛에 노출되지 않은 도안 부분은 라벤더 기름(lavender oil)이나 백색 원유에 담가 현상하면 금속판에 상이 만들어진다. 금속판을 부식시켜 형상(形象)은 오목판 각으로 금속판 위에 새겨지게 되고 이 오목판 형상으로부터 사진을 얻게 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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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니엡스는 최초로 영구적 사진술을 개발하여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최초의 카메라

레그라(Le Gras)에 있던 니엡스의 집 창밖 풍경. 니엡스가 1826년경 만들어낸 최초의 사진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레그라(Le Gras)에 있던 니엡스의 집 창밖 풍경. 니엡스가 1826년경 만들어낸 최초의 사진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니에프스의 발견은 사진술의 기본적인 원리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사진영상이 곧장 인쇄에 응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편 감광성을 가진 다양한 천연 합성물을 이용하여 사진 제판술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유럽과 미국에서 추진되었는데, 특히 스코틀랜드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먼곤 폰턴(Mungo Ponton)이 1839년에 발표한 크롬(chromium)의 특수 합성물이 갖는 감광성에 대한 보고서는 현대적인 사진제판 기술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폰턴은 크롬 합성물을 함유하고 있는 아교가 햇빛을 받았을 때 일으키는 화학적 변화를 밝혀냈지만 이러한 새로운 기술을 인쇄에 적용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진술의 선구자인 영국인 헨리 폭스 톨벗(Henry Fox Talbot)이 크롬으로 처리한 콜로이드(colloid) 사용 방법을 개발하여 사진 제판술을 오목 인쇄판에 도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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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사진제판 기술을 발명한 과학자인 먼곤 폰턴(Mungo Ponton)

사진기술을 응용한 인쇄판 제작공정인 사진제판

사진 제판은 인쇄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인쇄 기술로서 빛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현재는 제판용 카메라로 스크린을 이용해서 촬영하여 망점으로 형성된 필름을 만든 후 감광물질을 도포한 금속판·플라스틱판 등에 굽는 방식으로 판을 만듭니다. 이때 판 위에 상(像)을 새기는 방식은 판 표면을 기준으로 볼록판 인쇄와 오목판 인쇄로 나뉩니다. 인쇄하려고 하는 상이 양각으로 표현된 볼록판은 인쇄해야 할 부분이 판의 표면과 같기 때문에 판의 표면 전체에 잉크를 발라 인쇄 용지에 인쇄합니다. 반면 오목판의 상은 음각으로 처리되어 있어 잉크를 판의 전면에 바른 후 판의 표면에 있는 잉크를 닦아내고 압력을 주어 오목한 부분의 잉크가 인쇄용지에 묻혀지도록 인쇄합니다.

사진 출처

  1. https://en.wikipedia.org/wiki/Book_of_hours
  2. http://m.hc.go.kr/media/03_01.jsp?amode=view&idx=92&cpage=2&gcode=1042
  3. https://en.wikipedia.org/wiki/Etching
  4.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icéphore_Niépce_camera,_c._1820-1830_-_Musée_Nicéphore_Niépce_-_DSC06018.JPG
  5. https://en.wikipedia.org/wiki/File:View_from_the_Window_at_Le_Gras,_Joseph_Nicéphore_Niépce.jpg
  6. http://www.photography-news.com/2012/11/remembering-mungo-ponton-inventor-of.html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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