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스 문명과 황소 공중제비하는 미노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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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빛 바다의 한가운데 떠 있는 섬, 물에 둘러싸인 크레타 섬은 아름답고 비옥하다. 크레타 섬 주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도시는 90개가 있다. 그곳에서는 아키아족, 용감한 크레타 섬 원주민, 키도니아족, 도리아족과 고귀한 펠라그족의 세 부족들 등 온갖 종족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그 섬의 도시들 중에는 위대한 제우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미노스가 9년 주기로 다스린 대도시 크노소스가 있다.”-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에 묘사된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미노스 문명

신화로만 전해지던 크노소스가 발견된 것은 1898년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 경(Sir Arthur John Evans)이 왕궁을 발굴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BC 1600~1400년경 지중해를 지배하던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시대 궁전과 주변 건축물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는 이후 35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왕궁과 그곳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복원할 때까지 말입니다. 발굴 당시 크노소스 궁은 BC 1500년경 화산이 폭발했을 당시 모습 그대로 화산 파편에 묻힌 채 발견되었으며, 지금도 발굴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1898년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 경(Sir Arthur John Evans)이 크노소스 왕궁을 발굴하여 35년 동안 왕궁과 그곳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복원할 때까지 크노소스 왕궁과 미노스 문명은 전설의 영역이었다.

*1898년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 경(Sir Arthur John Evans)이 크노소스 왕궁을 발굴하여 35년 동안 왕궁과 그곳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복원할 때까지 크노소스 왕궁과 미노스 문명은 전설의 영역이었다.

크노소스는 이 시기에 유약을 칠한 검은 바탕에 여러 가지 색깔을 넣은 아름다운 다색 도기를 만들었습니다. 발굴로 드러난 프레스코화와 도기들은 몇천 년을 건너뛰어 우리들에게 미노아인들이 춤추는 장면, 운동하는 모습, 항해하는 장면, 지중해의 돌고래들의 모습들을 자연주의 양식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해군을 통해 많은 전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스코화나 도기의 그림이 밝고 화려하고 건강한 생활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은 미노스 문명이 강하고 평화지향적인 민족의 이루어진 웅장한 문화와 균형감을 지닌 모습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프레스코화와 도기들은 미노아 사람들의 춤추는 장면, 운동하는 모습, 항해하는 장면, 지중해의 돌고래들의 모습들을 자연주의 양식으로 전해준다.

*프레스코화와 도기들은 미노아 사람들의 춤추는 장면, 운동하는 모습, 항해하는 장면, 지중해의 돌고래들의 모습들을 자연주의 양식으로 전해준다.

황소 공중제비를 하는 미노아 사람들

흥미로운 것은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황소 등을 두 손으로 짚고 두 다리를 공중으로 쳐들어서 반대 방향으로 넘는 공중제비하는 장면입니다. 상상해 보면 이렇습니다. 간편하고 헐렁한 옷을 입은 서너 명 선수들이 등장하고 원형 경기장에 가득찬 군중들은 선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겠지요. 문이 열리고 성난 황소가 경기장 안으로 뛰어듭니다. 함성은 더욱 커지고 황소는 더욱 흥분하여 선수들을 향해 돌진했을 것입니다. 공중제비 선수는 황소의 뿔을 잡고 뛰어올라 등을 양손으로 짚고 황소의 꼬리 쪽에 착지하고 그쪽에 있던 다른 선수들이 잡아 줍니다. 이 놀라운 장면이 거듭될수록 군중들의 박수와 함성은 더욱 커지고 어리둥절해진 황소를 보고 군중들의 웃음소리도 커졌을 것입니다. 공중제비 선수들은 아마도 어렷을 적부터 뜀틀이나 염소 같은 작은 동물의 등을 뛰어 오르는 연습을 하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황소 공중제비 경기는 신이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미노아 사람들이 축제를 위한 행사였을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인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아 문명의 여러 예술품에 황소가 가장 널리 쓰인 소재인 것과 관련됩니다. 뿐만 아니라 크노소스 궁의 많은 프레스코 벽화와 조각품들이 황소 공중제비를 소재로 한 사실을 볼 때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경기였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크노소스 궁의 프레스코 벽화와 조각품들에 황소 공중제비를 소재로 한 것이 많은 사실을 볼 때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경기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크노소스 궁의 프레스코 벽화와 조각품들에 황소 공중제비를 소재로 한 것이 많은 사실을 볼 때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경기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뱀의 여신상이라고 부르는 크노소스 궁전 성소(聖所) 바닥에서 출토된 BC 1700년경의 미니어처(miniature) 조각은 당시 미노스 여인들의 옷차림과 더불어 체형과 생김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미니어처는 미노스 여인이 뱀을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두 손을 앞으로 뻗고 있으며 뱀을 쥐고 주름으로 장식된 치마에 벨트로 허리를 조이고 가슴을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가슴을 드러낸 옷차림과 주름 장식의 치마는 크노스스의 프레스코화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미노아인들의 미니어처 조각상의 제작은 유광택 도자기 대신 청동, 상아, 테라코타 등으로 만들어졌고 주제도 다양해져 예배드리는 남자, 여신, 황소를 비롯한 동물 등을 표현한 조각들이 나타납니다.

*크노소스에서 출토된 뱀의 여신상 미니어처. 미니어처는 뱀을 손에 들고 가슴을 드러낸 옷차림과 주름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크노소스에서 출토된 뱀의 여신상 미니어처. 미니어처는 뱀을 손에 들고 가슴을 드러낸 옷차림과 주름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크노소스 궁의 프레스코화 벽의 여인들은 미노스 시대 예술가들의 정렬이 담긴 작품으로서 미소와 눈빛과 표현하기 힘든 감수성을 담고 있습니다. 발굴 당시 언론사들은 찰랑거리는 머리, 커다랗게 뜬 눈, 곧게 선 코의 윤곽과 턱의 모양, 그리고 야성적이면서도 당당한 분위기를 보면서 아시아보다는 유럽인의 조상이며 미노아 문명을 유럽의 기원이라고까지 흥분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궁전의 성소로 보이는 장소의 항아리들에서 제물로 바쳐졌을 11살과 8살 난 어린이의 유골들이 발견되고 요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달팽이들이 함께 뼈와 살이 분리된 흔적들이 발견되면서 유럽의 기원 이야기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크노소스 궁 알현실에 있는 푸른 옷을 입은 세 여인의 프레스코화 얼굴의 윤곽과 머리 스타일이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당시 미노스 여인들의 화려하고 아름답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크노소스 궁 알현실에 있는 푸른 옷을 입은 세 여인의 프레스코화 얼굴의 윤곽과 머리 스타일이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당시 미노스 여인들의 화려하고 아름답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갑작스런 종말, 미노아 문명과 아틀란티스

크노소스는 두 강의 합류점 사이에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있으며, 크레타 섬 북해안에서 내륙으로 8km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BC 1500년경 지중해의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 최남단 섬인 티라(Thíra) 섬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의 파편은 남쪽으로 125km나 떨어진 크레타 섬을 덮치고 화산 폭발이 일으킨 해일이 해안과 중심부를 폐허로 만들어 크노소스 궁전을 비롯하여 그곳에서 번창하던 미노아 문명을 모두 파괴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겨우 살아남은 크레타 섬 주민들은 대부분은 그리스 지역으로 이주하고 찬란했던 미노아 문명은 사실상 붕괴된 것입니다.

미노스 문명이 파괴된 후 그리스 본토는 이미 확산되어 있던 미노스 문명을 더욱 발달하여 미케네 문명(Mycenaean civilization)으로 알려진 새로운 문명을 출현시킵니다. 그후 크노소스 궁전은 페허가 된 채 수많은 유적과 함께 묻히고 크레타섬은 그리스의 변방이 된 채 신화와 전설로만 남게 됩니다. 그후 지중해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는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로 바뀝니다. 플라톤(Plato)의 저작 『티마이오스(Timaeus)』와 『크리티아스(Critias)』에 언급된 전설상의 섬이자 국가인 아틀란티스(Atlantis) 전설도 크레타 섬 미노아 문명이 겪은 재난에 대한 이집트인의 자료들에서 유래한 것일지도 모르겠지요.

*포도빛 바다의 한가운데 떠 있는 섬, 물에 둘러싸인 아름답고 비옥한 섬으로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에 묘사된 크레타 섬

*포도빛 바다의 한가운데 떠 있는 섬, 물에 둘러싸인 아름답고 비옥한 섬으로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에 묘사된 크레타 섬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inoan_civilization
  • https://www.flickr.com/photos/69716881@N02/7766570316/in/album-72157631814568300/
  • https://en.wikipedia.org/wiki/Arthur_Evans
  • http://www.veniceclayartists.com/minoan-art-pottery/
  • https://en.wikipedia.org/wiki/Minoan_civilization
  • https://en.wikipedia.org/wiki/Crete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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